어두워질 때까지, 아무것도 안 한

2020.07.27 03:00

국토교통부 장관인 김현미에게 이제 그만 물러나야 한다는 글을 쓰려고 생각한 지 좀 된다. 그래도 인지상정이라, 차마 그렇게 하지 못했다. 영화 <어두워질 때까지>는 오드리 헵번이 눈이 멀어가는 피해자로 최고의 연기력을 보여준 작품이다. 마약이 숨겨진 인형을 찾으러 온 범인들을 장님 여성이 대처하기 위해선 어둠이 필요하다.

우석훈 경제학자

우석훈 경제학자

문재인 정부에 부동산 정책은 “어두워질 때까지”라는 표현과도 같은 것이 되었다. 경실련에서 연일 발표하는 다주택 고위공무원 명단과 수치들은 이 영화와 같은 구도다. 집 많이 가진 고위직들이 실제로는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아파트 정책을 한 것 아니냐, 그런 구도가 생겨났다.

청년들은 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을 받는다는 ‘영끌’이라는 신조어를 쓴다. 가수 남진의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은 이번 생에 없다는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어)’ 절망을 느끼고 있다. 정부는 집값을 잡겠다면서 지난 3년 동안 스물두번이나 대책을 쏟아냈지만 결과적으로 정부를 믿고 집을 사지 않은 사람만 ‘바보’가 됐다. 지금은 무주택자, 1주택자, 다주택자 모두가 분노하고 있다. 그 출발부터 현재까지, 주무 장관으로 김현미가 있다. 그사이에 탈토건 기조를 유지하려던 장하성 정책실장도, 온건 개발주의자였던 김수현 정책실장도 자리를 떠났다. 이제 정권은 무능한 데다 남 탓만 한다는 프레임 안으로 단단히 들어가 버렸다. 이제 충분히 어두워졌다.

지금 부동산 대책에 전환점을 찾지 못하면 경제위기가 심화되는 것은 물론이고, 이 정권이 결국 망한다. 20대 남성과 여성, 각각의 이유로 정권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있다. 여기에 결혼과 출산이 눈앞에 있는 30대도 현실적 고통으로 등을 돌리려고 한다. 어둠이 이미 짙어지고 있는데, 장관인 김현미라도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고 물러나야 한다. 그게 프레임을 바꾸는 출발점이다.

이번 생에 내 집은 없다는
청년들의 ‘이생망’ 절규
무능한 데다 남 탓만 하다가
토건으로 향하는 부동산 대책
정권 망하기 전 하루빨리
김현미 장관이 물러나야

날이 어두워지니까 토건이 돌아온다. 그린벨트 해제 논의로 시작된 ‘민주 토건’은 군부대 골프장 개발, 고밀도 개발에 이어 행정수도 이전까지 몇 주 만에 급하게 넘어왔다. 집 짓고 빌딩 올리면 부동산 문제가 풀릴까? 건설방식으로 대안을 찾겠다는 홍남기 부총리의 얼굴에 간만에 화색이 도는 것 같다. 그는 정부 사람일지는 몰라도 정권 사람은 아니다. 정권이야 망하든 말든, 토건만 챙기면 좋아할 사람이다. 김현미는 다르다. 정권이 성공해야 의미가 있는 것 아닌가?

‘공유지’에 관한 연구로 오스트롬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것은 2009년의 일이다. 공공이 택지를 조성해서 민간에 넘기는 공영개발 방식 여기에 선분양 특혜는 물론이고 집을 분양이라는 방식으로 공공이 개입하는 나라는 이제 한국밖에 없다. 원 모델이었던 일본도 이제는 그렇게 안 한다. 택지개발 방식부터 분양 방식까지, 한국 부동산의 근본 모델을 재검토하는 것은 정권 출범기에 바로 해야 했다. 민의를 모으고, 공청회를 하고, 민주 세력이 나아가야 할 부동산 방향에 대한 큰 논의가 있어야 했다. 아무것도 안 했다. 하다못해 선분양에 대한 제도 개선도 안 하고, 그냥 세율만 조정하면 된다고 버텼다. 그러고는 지금 다시 토건으로 달려가려고 한다. 장관 그만둘 이유는 차고 넘친다.

최소한 국유지 등 공유지를 민간에 넘길 때엔 토지까지 민간에 넘겨선 안 된다는 대원칙이라도 세우면 좋겠다. 집을 지을 때 토지 지분이 아니라 건물 지분만 있어도 충분하다. 건축비는 전국 어디서나 비슷하다. 토지 가격이 빠지면 20~30대 청년들도 받아들일 임대료가 가능하다. 여기에 100년 아니 최소 70년은 버틸 정도의 설계 기준을 만족시켜서 일단 입주한 사람이 편안히 한평생 살아갈 보장을 해주는 게 그렇게 어렵나? 문재인 정권 덕분에 편안하게 살게 되었다는 청년세대가 만들어져야 정권이 성공한다. 그리고 그게 경제가 사는 길이다.

2008년 촛불집회 때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는 구호가 유행했다. 집권여당 출신의 국토부 장관, 지금 김현미는 어둠에 속하게 되었다. 정권 망하기 전에 지금이라도 ‘빚’ 아닌 ‘빛’을 만들어야 한다. 성경에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라는 표현이 있다. 투기꾼의 것은 투기꾼에게, 새로 투기꾼 먹이를 주는 방식의 토건을 하려는 국토교통부, 생각을 바꾸자. 투기하지 않아도 한평생 살아가는 방식의 사회적 주택이 전체의 3분의 1 정도가 되면, 투기하고 싶은 사람들은 투기하고, 안 하고 싶은 사람은 그냥 사회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스웨덴이 그렇게 한다. 그 전환점을 위해서라도 장관 김현미가 스스로 물러나야 할 것 같다.

사퇴가 주는 효과가 한 가지 더 있다. 장관이 불명예스럽게 물러나야 그 밑의 국토부 공무원들이 새로운 장관을 위해 조금이라도 더 근본적인 고민을 하게 된다. 더 깊고 더 근본적으로 공공성을 고민해야 이 정권이 버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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