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독사의 자식들아!

2020.10.17 03:00 입력 2020.10.18 09:56 수정

“글을 쓴다는 건 누구를 옹호할 것인지 선택하는 일이야.” 신문에 칼럼을 기고하게 됐다고 말했을 때 지인은 이렇게 말했다. 그 다정하고 단정한 말이 내가 글을 쓰는 이유이자 지향이 되었다. 어떤 일에 기어이 ‘불편’을 드러낼 때도, 뜨겁게 항의할 때도 나의 옳음과 지식을 전시하는 게 아닌, 누구의 곁에 서는 일이 되기를 바랐다. 어디 글쓰기뿐일까. 사사로운 소비뿐 아니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는 사진이나 낙서조차도 ‘무엇을 드러내어 누구를 옹호할 것인가’에 관해 고민하는 과정이다. 나에게 좋은 사회란 사회 구성원이 서로를 차별하거나 혐오하지 않고, 안전하게, 제 숨을 쉬며 사는 곳이다. 그러기 위해 서로의 ‘곁’이 되고자 노력하는 게 우리의 일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글로 옹호하고, 어떤 이는 거리에서 함께 싸운다. 그리고 여기 ‘축복’하기를 선택한 사람이 있다.

오수경 자유기고가

오수경 자유기고가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 이동환 목사. 그는 2019년 인천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에 참석해 퀴어 그리스도인에게 축복식을 집례했다는 이유로 교단 경기연회 재판위원회에 기소됐다. 그리고 10월15일 재판위는 교리와장정 재판법 3조 8항 ‘마약법 위반, 도박 및 동성애를 찬성하거나 동조하는 행위를 하였을 때’를 적용해 이동환 목사에게 정직 2년을 선고했다. 출교와 면직을 제외하고는 최고 수위 징계다. 한국 개신교 역사상 최초로 ‘동성애를 지지’하고 그들을 ‘축복’했다는 이유로 처벌받은 것이다.

축복이 죄라니. 수십년 동안 그리스도인으로 살았지만 처음 듣는 말이다. 성경 어디에도 ‘사람 가려가며 축복하라’는 말은 없다. 오히려 그 반대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들의 친구였고, ‘죽음’까지 마다하지 않고 인간들을 사랑하는 데 모범을 보이신 분이다. 그런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사랑을 실천해도 모자랄 교회가 도리어 ‘축복한 죄’를 창조한 것이다. 이동환 목사가 한 일이라곤 축제 참가자들에게 꽃잎을 뿌리며 그들을 축복한 것이 전부다. 그리스도인이자 목회자로서 당연한 일을 한 것이다. 이유도 단순했다. “이 땅의 모든 성소수자와 사회적 소수자를 향한 낙인과 혐오, 차별과 배제에 반대”하기에 축복을 통해 그들을 옹호한 것이다. 이게 죄인가? ‘있는 모습 그대로’ 살고자 하는 사람을 낙인찍고 혐오하는 일에 앞장서는 종교가 어떻게 종교일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이동환 목사가 옳고, 교단이 틀렸다.

이동환 목사는 선고 직후 “천동설이 우스워지고 흑인 노예제가 폐지되고 여성이 목사안수를 받게 되었듯, 누구에게나 평등하고 안전한 교회를 만들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저항하겠다”고 밝혔다. 책 <그냥, 사람>의 저자 홍은전은 저항하는 사람들을 “해와 달의 질서에 맞서는 일처럼 아득한 것이지만 그 어려운 일을 기어이 하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했다. 사회는 이렇게 저항하는 사람들에 의해 조금이라도 나아지리라 믿는다. 나는 그 아득하고 어려운 일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이동환 목사를 옹호하고자, 한국교회가 신앙이라는 이름의 죄를 짓는 것에 저항하고자, 이동환 목사 곁에 서는 일에 함께해주기를 부탁하고자 이 글을 쓴다. 마지막으로 예수 그리스도는 타락한 종교권력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독사의 자식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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