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 속에 가려진 죽음, 애도마저 사라졌다

2020.10.31 03:00 입력 2020.10.31 03:01 수정

확진자 숫자에 가린 사망자들
장례도 금지되는 황망한 죽음
합동추모 공간은 어디도 없어
공동체 전체가 아파하는 문화
코로나19 시대에도 필요하다

2020년 우리의 일상이 완전히 바뀌었다. 오전 10시 즈음이면 우리는 전날 코로나19 확진자 수를 확인한다. 두 자릿수를 유지해야 한다는 절박한 마음도 있고, 숫자가 조금씩 줄어들 때면 안도감도 느낀다. 누구나 확진자가 되면 가족은 물론 주변에도 의도치 않은 피해를 주고, 지역사회에는 즉시 이름 없는 n번 확진자로 보고된다.

권수영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상담학 교수

권수영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상담학 교수

언제부터인가 방송 화면은 사망자 숫자를 보여주지 않았다. 우리도 아무렇지도 않게 확진자 숫자와 완치자 숫자만 확인해도 무방한 것처럼 느낀다. 우리 모두 언젠가 확진자와 완치자 숫자 차이가 제로가 되는 날 2020년 이전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꿈꾸며 사는지도 모른다. 간혹 사망자 숫자를 뉴스 앵커에게 들어도, 그래도 적은 숫자라고 애써 위로한다. 미국이나 유럽의 사망자 숫자에 비하면 턱없이 적다고 내심 감탄하기도 한다.

지난 5월 미국 뉴욕타임스는 지면 1면에 ‘미국 사망자 대략 10만명, 막대한 상실’이라는 헤드라인 아래 이렇게 적었다. ‘그저 사망자 명단에 있는 이름이 아니다. 그들은 우리였다.’ 그리고 사망자 1000명의 이름과 짤막한 부고를 빼곡하게 소개했다. 뉴욕타임스 에디터는 우리 모두가 코로나 데이터에 지쳐가고 있음을 깨닫고 경각심을 일깨우려고 이런 단체 부고를 기획했다고 밝혔다. 나는 미국 양로원에서 코로나19에 감염되어 부친이 사망했는데도, 얼굴 한번 보지 못하고 가족이 모여 장례마저 치르지 못했다는 대학 선배 소식을 듣고서야 단체 부고의 메시지가 가슴에 와 닿았다. 숫자 속에 가려진 상실의 아픔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의 아버지요, 친지, 그리고 가까운 이웃일 수 있다.

우리 문화는 개인의 죽음을 공동체가 애도하는 문화였다. 전통적으로 장례는 마을 전체의 행사였고, 마을 사람 모두가 모여 함께 아파했다. 함께 모여 곡을 하면서, 유가족들이 애써 슬픔을 감추지 않고 문상객과 함께 충분히 나누도록 배려했다. 이제는 단체로 곡을 하는 일은 없어졌지만, 장례식장에 함께 모여 며칠 동안을 머물며 유가족을 위로하는 일은 필수적인 절차다. 미국과 같이 장례식장에 모신 시신을 단 몇 시간 동안만 뷰잉(viewing)이란 행사를 통해 마주하고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는 문상과는 사뭇 다르다.

어느 국가든지 지도자가 사망하면 온 국민이 애도하고 곳곳에 추모공간이 생긴다. 우리는 꼭 유명인사가 아니더라도 국가적 재난이 발생하면, 합동분향소가 생기고 온 국민이 함께 아파하고 나라 전체가 위로하는 추모문화를 가지지 않았던가? 나는 KBS에서 진행했던 천안함 전사자들을 위한 추모 방송과 세월호 참사 추모방송 등의 패널로 참여해 국가적 애도에 동참했던 적이 기억났다. 하지만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한 죽음은 달랐다. 어느 방송에서도 추모방송을 기획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 죽음 뒤에 가려진 아픔마저 감추는 듯했다.

코로나19 감염병의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그 황망한 죽음과 유가족의 슬픔은 전혀 다르지 않다. 아니 갑절로 배가된다. 24시간 이후에 시작되는 입관절차나 조문 행사 등은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정성껏 준비해둔 수의도 무용지물이 된다. 마치 오염된 짐짝 취급을 당하면서 바로 24시간 안에 화장을 끝내야 한다. 가족마저 감염되면 격리지침에 의해 화장장조차 따라 갈 수 없다. 도대체 코로나19 사망자 유가족들은 언제 울어야 하는가? 시신만 한 줌의 재로 사라진 것이 아니다. 가족과 친지의 애도마저 사라졌다.

최근 미국의 수도 워싱턴 국립 대성당에서는 사망자가 1000명씩 증가할 때마다 200번의 종을 치면서 애도하는 의식을 시작했다. 대성당 감독관은 의식이 진행되는 30분 내내 가장 비극적인 죽음의 현실을 온몸으로 느낀다고 언급했다. 우리도 코로나로 목숨을 잃은 이들의 아픔을 함께 아파하는 국민적인 애도 의식이라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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