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용 분류장을 아십니까

2020.11.02 03:00 입력 2020.11.02 03:04 수정

스물셋 줄리안은 가나에서 온 유학생이다. 유학생 비자로 한국어학당에 다니면서, 일주일에 3일 정도 아르바이트를 한다. 많지 않은 돈이지만 주로 월세와 식비 등 생활비에 쓰고 남으면 모아뒀다가 몇 달에 한 번 고향에 보낸다. 줄리안이 일하는 곳은 ○○자원환경, 재활용쓰레기를 분류하는 사업장이다. 경기도에서 수거한 재활용쓰레기를 가져다가 그중에서 진짜 재활용이 가능한 플라스틱, 캔 등을 골라내는 일이다. 재활용쓰레기 중에서 다시 재활용쓰레기를 분류하는 일이라니 말이 이상하다. 사실, 우리가 버리고 있는 재활용쓰레기들 중 실제 재활용되는 양은 많지 않다고 한다.

조영관 변호사·이주민센터 친구 센터장

조영관 변호사·이주민센터 친구 센터장

줄리안의 작업장은 2층이다. 컨베이어 벨트가 늘어선 작업장에는 모두 얼굴을 가린 외국인들만 있다. 작업장에는 10명의 직원이 있는데 한국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다른 건물에 있는 사무실에는 한국인 총무 언니가 있는데, 출퇴근 기록부를 확인하려고 하루에 두 번 작업장에 들른다. 사업장 내 모든 작업지시는 1층에서 지게차를 모는 핫산이 한다. 핫산은 이 회사에서 10년 넘게 일한 베테랑이다. 비자가 없어 회사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쓰레기 더미 한쪽 컨테이너가 그의 모든 것이다. 2층 작업장 중간중간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는데, 구멍을 통해 1층으로 쓰레기를 던져 쌓이면 핫산의 지게차가 압축기에 넣는다. 2층 작업자의 허리춤에 달린 마대에는 캔과 페트병을 담는다. 분류되는 재활용 중 주방기구, 전자기기 등은 별도 분류한다.

줄리안과 동료들은 오전 7시부터 오후 9시까지 일한다. 낮 12시와 오후 6시 점심과 저녁 시간 한 시간씩을 제외하면 하루 12시간 일하는 셈이다. 하루 일당은 10만원이고 차비와 식대는 따로 계산한다. 작업장 입구에 출근 기록을 하는데 커다란 글씨로 ‘-1000 won / 1 minute’라고 적힌 종이가 붙어 있다. 정시에 자리에 오지 않으면 일당에서 1분당 1000원씩 공제한다. 그렇게 일해 줄리안이 버는 돈은 한 달에 120만원 남짓이다.

냄새가 지독하다. 처음 몇 주 동안은 식사 시간에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다. 악취에 질려 후각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페트병, 캔에 남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각종 액체들과 먼지가 컨베이어 벨트 진동에 튀어 온 작업장에 날린다. 한여름에도 머리까지 가리는 수건을 뒤집어쓸 수밖에 없다. 컨베이어 벨트 높이에 맞추어 일하다 보니 자세도 구부정해서 손목과 허리가 아프다. 원래 유리류는 포함되어 있지 않아야 하지만 벨트에 올라탄 쓰레기들 사이로 깨진 병, 칼이나 못과 같은 날카로운 물건들이 돌아다닌다. 장갑을 여러 겹 두껍게 끼는 것이 안전한데, 여러 겹 장갑을 끼면 비닐 등을 걷어 내는 데 미끄러져 시간이 많이 걸린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물건들로 충격을 받기도 한다. 최근에는 코로나19로 감염에 대한 공포가 더해졌다. 재활용에 섞여 나오는 마스크나 주사기 등 바이러스가 감염되어 있을 수도 있는 쓰레기를 마주하지만 줄리안에게 주어지는 것은 마스크와 손소독제뿐이다.

방금 내 손을 떠나 재활용품 통에 담긴 테이크아웃 커피잔도 줄리안과 같은 외국인 노동자의 손을 거치게 될 것이다. 보이지 않는 세상에 지고 있는 빚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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