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코로나 풍경’

2020.10.28 03:00 입력 2020.10.28 03:02 수정

뉴욕은 미국이지만 미국이 아니다. 전 세계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과 문화들이 섞여 그 이상의 무언가를 만들며 시시각각 달라지고 안주하기를 거부한다. 분명 미국 안에 위치하지만 미국인에게조차 신기하고 생소한 곳이다. 8년 연속 늘어가던 뉴욕시 방문자 중 60% 이상이 관광 목적의 미국인이다.

코로나19로 뉴욕은 미국에서 가장 먼저 큰 타격을 받았다. 3월 중순 재택 및 비필수 사업장 영업정지 명령이 내려졌다. 6월 말 겨우 경제봉쇄가 풀렸지만 뉴요커들에게 현재의 뉴욕은 여전히 낯설다.

이채린 | 뉴욕시민·자유기고가

이채린 | 뉴욕시민·자유기고가

누구는 이제 ‘헬뉴욕’이라고 한다. 감염자 수가 치솟고 개학이 거듭 미뤄지자 특히 아이가 있는 가정들은 이사를 가거나 다른 주로 대피했다. 화장지와 손소독제는 동났으며 시신 보관을 위한 냉동차는 악취를 뿜어냈다. 뉴욕항엔 미 해병 병원선이 급파됐고 뉴요커들의 사랑 센트럴파크에는 야전병원이 차려졌다. 5월 조지 플로이드 사망사건으로 흑인인권운동(BLM) 시위가 격화되면서 시위대의 구호 소리가 앰뷸런스의 사이렌 소리에 겹쳐졌다.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재개장도 내년 5월로 미뤄졌다. 재택근무가 늘어나면서 월세가 10%가량 떨어지고 상업부동산들도 곳곳이 비었다.

총과 탄알 판매는 늘고 가격도 치솟았다. 총기사고도 작년에 비해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11월3일 미 대선을 앞두고 긴장감은 더 고조되고 있다. 지지자들이 민병대를 모아 모의훈련을 한다는 얘기도 공공연하다. 뉴욕총영사관은 미 대선 관련 테러나 폭력에 대비한 행동요령을 교민들에게 제공했다.

누구는 그래도 ‘뉴욕은 뉴욕’이라 한다. 100년 전 스페인독감도 이겨냈고 9·11테러의 상처도 회복하고 월가의 위기들도 넘어가며 끊임없이 성장해왔다. 이곳에 오래 살수록 느끼는 것은 뉴요커들의 회복탄성력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세계의 문화가 혼재하며 시너지를 만들어가는 가운데 적응을 넘어 이를 삶의 원동력 삼아 살아가는 뉴요커들에게 코로나19도 예외는 아니다.

다른 지역과 달리 뉴요커 대다수는 마스크를 쓴다. 특유의 투덜거림과 까탈스러움으로 시 당국을 압박했고, 뉴욕시는 재빠르게 정책과 지침을 만들어 식당들이 6월부터 식당 앞 인도와 도로에서 야외영업을 하도록 했다. 일부 도로는 아예 차의 진입을 막아 도로 전체가 식당이다. 천막을 치고 꽃 장식도 한 모습이 흥겹다. 대기업의 출근을 독려해 비어 있던 오피스들과 그 주변도 제법 채워지고 있다.

공원에선 결혼식과 생일파티가 열린다. 문 닫은 헬스센터 대신 운동수업도 공원에서 한다. 스핀운동 체인인 솔사이클은 아예 바이크들을 멀찌감치 떨어뜨려 내놓고 야외 스핀클래스를 연다. 수강생들은 꽝꽝 울리는 음악 소리와 함께 코로나 시대를 사는 두려움을 떨친다.

최고령 백화점인 메이시스는 159년 전통의 산타행사를 취소했지만 대신 “모든 어린이가 산타의 마법을 만날 가상공간을 열 것”이라고 밝혔다. 그렇게 뉴요커들은 코로나 속에서 조심스레 삶의 즐거움을 애써 부여잡는다.

앞으로 뉴욕이 어찌 될지 내가 알 리 없다. 컬럼비아대의 경제학자 제프리 색스 교수의 말을 빌릴까 한다. “뉴욕은 변하겠지만 살아남을 것이고, 나도 뉴욕을 지킬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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