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우울증을 막을 수 있다

2020.11.28 03:00 입력 2020.11.28 03:02 수정

생태계 교란이 불러낸 전염병
코로나 블루까지 뼈아픈 시련
기후위기에도 둔감했던 우리
당장 생태적 거리 두기 절실

최근 한 방송에서 지난해 9월부터 올해 2월까지 이어진 호주 산불로 피해를 입은 야생동물에 대한 후속보도를 했다. 당시 4만마리에 가까운 코알라가 산불로 목숨을 잃었고, 구사일생으로 구조된 코알라 머튼의 이야기가 보도되면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머튼은 수개월의 치료와 회복 기간을 거쳐 최근 산불이 났던 야생으로 다시 돌아갔다고 전해졌다.

권수영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상담학 교수

권수영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상담학 교수

지난 2월 호주의 한 교수와 통화를 한 적이 있다. 우리는 끝날 줄 모르는 산불 이야기를 했고, 그 교수는 호주인들이 잇단 자연재해로 집단 우울증을 겪게 될 것 같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나는 수려하고 장대한 자연환경을 자랑해온 호주인들에게 남한 면적보다도 넓은 산림의 소실, 수백만마리 야생동물의 죽음, 게다가 국가의 상징과도 같은 코알라마저 멸종위기에 처하게 된다면 충분히 그런 우울감을 가져올 만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통화를 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세계는 코로나19의 격랑 가운데 빠져들었고, 사회적 거리 두기와 자가격리는 우리에게 평범한 일상과 대면 관계의 상실로 인한 코로나 블루를 안겼다. 코로나 블루를 겪으면서 배운 교훈이 하나 있다. 인류에게 위협을 주는 감염병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이유가 바로 사람과 동물 모두에게 전파되는 ‘인수공통 감염병’ 때문이고, 그 발생 원인은 인간의 탐욕으로 인한 생태계 교란이었다는 점이다.

천연두·소아마비처럼 인간에게만 침범하는 바이러스는 백신 개발을 통해 거의 박멸된 반면, 이런 인수공통 감염병은 전 세계가 올스톱이 될 만큼 그 피해가 실로 치명적이다. 모든 야생동물을 지구에서 모조리 추방시키지 않는 한 이런 감염병 근절은 불가능하다. 결국 야생의 맛을 즐기려는 침범자 인간으로 말미암아 자초된 신종 감염병과 그로 인한 불안과 공포는 앞으로도 우리를 지속적으로 괴롭힐 수밖에 없다. 생각만 해도 우울하다.

우리 모두는 지금 이런 감염병 대유행을 사후에 대처하기에도 몸과 마음이 바쁘다. 그래서인지 방역과 백신에 대한 대책을 논할 뿐 병인(病因)을 찾아 근본적인 예방책을 모색하기엔 아직 역부족인 듯싶다. 창피하게도 K방역 선진국 대한민국은 호주와 더불어 기후위기에 가장 둔감한 나라들 중 하나로 꼽힌다. 세계 61개국을 대상으로 평가한 2020년 기후위기 대응지수에서 호주가 56위, 한국이 58위를 차지했다. 호주 산불도 지구온난화로 인한 가뭄과 건조화가 그 원인이었다고 말한다. 코로나 위기에도 우수 방역국가로 높은 위상을 드러낸 우리지만 자칫 이런 최하위 순위는 슬쩍 눈감아 버리기 쉽다.

호주는 물론 우리 한국도 코로나 블루에 이어 클라이밋 블루(climate blue)를 경험할 수 있다. 우선 나 자신부터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고 편리한 자가용 이용과 에너지 소비를 줄이지 못하면 길고 긴 장마와 태풍 피해는 더욱 극심해질 수 있다. 최근 중국은 한 번의 장마로 남한 인구보다 많은 6500만명이 집을 잃었다. 이렇게 기후난민들이 삶의 터전을 잃는 일은 이미 우리의 일상이 되고 있다. 내년 1월부터 발효될 ‘파리기후변화협약’의 기후행동 목표인 2030년까지 지구 평균기온 상승폭을 1.5도 이하로 억제하기 위해선 국제기구나 환경단체가 아니라 온 국민이 발 벗고 나서야 다가올 클라이밋 블루를 막을 수 있다.

우울증을 ‘영혼의 감기’라고 부르는 이유는 감기 증상이 신체 면역체계의 저하를 알려주는 역할을 하듯, 우울증도 우리의 영혼과 외부세계의 관계망이 부실해지면 알려주는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클라이밋 블루를 막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이젠 자연과 생태계와의 상생 관계를 위한 적절한 거리 두기가 요청된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나와 이웃을 위한 배려이듯, 당장 오늘부터 생태적 거리 두기도 절실히 필요하다. 이번 대학원 입시부터는 종이 서류 없이 온라인 접수를 하고 면접심사 현장에서 다소 불편하더라도 원서를 일체 복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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