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때문에 발길이 막힌 이들은 비행기를 타고 면세점만 찍고 오는 관광에 나선다. 최소 3년은 비행기를 안 탄다고 선언한 나는 스웨덴, 케냐, 캐나다에 이르는 기억 속 여행에 나선다. 마시는 물 관련 테마여행이랄까.

고금숙 플라스틱프리 활동가

고금숙 플라스틱프리 활동가

스웨덴 화학물질관리청에서는 마실 물을 찾는 내게 싱크대를 가리켰다. 스웨덴 공무원들은 싱크대 수도꼭지를 정수기처럼 사용했다. 이케아의 나라답게 레스토랑에서는 참한 유리병에 수돗물을 담아줬다. 반면 500㎖l 생수 한 병이 4000원이었다. 케냐는 비닐봉지 한 장에 4000만원의 벌금이 나오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비닐봉지 규제를 시행 중이다. 하지만 숙소마다 생수가 나왔다. 사자가 길고양이처럼 흔한 마사이마라 국립공원에도 생수병이 굴러다녔다. 나는 필터가 부착된 ‘정수 빨대’를 들고 다니며 수돗물을 정수해 마셨다. 플라스틱을 버리지 않아서 좋았으나, 찜찜하고 불편했다. 캐나다 친구네에서는 주전자에 필터가 들어 있는 형태의 ‘브리타’ 정수기를 처음 써봤다. 반대로 서울을 방문한 캐나다 친구는 왜 한국인들은 집에 크나큰 전기 정수기를 모셔 두냐고 물었다. 바야흐로 이십년 전의 일. 이제 우리는 앙증맞은 크기의 정수기도, 브리타 정수기도 쉽게 살 수 있다.

나는 브리타 정수기를 꽤 오래 사용했었다. 전기도 안 쓰지, 크기도 작지, 가격도 저렴하지, 필터교체도 쉽지, 물을 끓일 필요도 없지, 무엇보다 쓰레기가 덜 나왔다. 내가 만난 브리타 정수기 이용자들은 모두 한마음이었다. 생수병을 버리지 않고도 이토록 저렴하고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다니. 생수를 마시는 사람은 수돗물을 마시는 사람보다 20배 많은 미세플라스틱을 섭취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러니 내게 브리타 정수기는 고마운 물건이었다. 미국·캐나다·영국·독일·호주 등에서 다 쓴 필터를 회수해 재활용한다는 소식을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 다른 나라에는 진열대 옆에 폐필터 수거함을 비치하거나 소비자가 필터를 돌려보내면 재활용을 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브리타 코리아에서는 친환경 물질이니 재활용 쓰레기로 분리배출하라면서도 아직 자체적인 재활용 회수 프로그램은 마련하지 못했다고 했다. 재활용 분리배출의 4대 원칙은 ‘비운다, 헹군다, 분리한다, 섞지 않는다’이다. 플라스틱 필터 안에는 활성탄과 양이온수지가 섞여 있어 비우거나 헹구거나 분리할 수 없다. 필터를 열어 내용물을 제거하려 해도 도통 열리지 않는다. 그때 미국 사례가 눈에 밟혔다. 한 시민이 나서 600개의 폐필터와 1만6000명의 서명을 회사에 전한 결과 미국에 재활용 회수 프로그램이 도입됐다는 이야기.

그래서 우리도 폐필터를 모으고 서명을 받는 중이다. 이미 600개 넘는 필터들이 모였고 1만3000명이 서명했다. 우리의 요구는 한국에도 재활용 회수 프로그램을 도입할 것, 더 나아가 알맹이만 리필해 재사용할 수 있는 필터로 제품을 디자인하라는 것이다. 소비자에게는 분리배출을 잘할 책임이 있다. 동시에 기업은 쓰레기가 덜 나오는 제품을 만들고 그럼에도 배출되는 자사 제품을 회수해 재활용할 책임이 있다.

여행은 낯선 경험을 기억에 쌓아 다르게 보는 법을 알려준다. 기억 속 여행을 꺼내먹으며 쓰레기를 다시 생각한다. 그 힘으로 지금의 이곳을 조금이나마 바꿔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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