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언 말고 계획

2020.11.20 03:00 입력 2020.11.20 03:02 수정

얼마전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에서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전국 226개 기초지자체의 ‘기후위기비상선언’과 국회의 ‘기후위기 비상대응 촉구 결의안’에 이어 나온 대통령의 탄소중립 선언은 중요한 진척이다. 하지만 선언은 끝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다. 대통령의 선언을 듣고 바로 든 생각은 ‘선언 말고 계획’이었다. 지난해 유엔 사무총장은 ‘기후행동정상회의’에 참석하는 각국 대표에게 ‘연설 말고 계획’을 가져오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온실가스 감축 계획 대신 ‘세계 푸른 하늘의날’ 제안을 가져갔다.

조현철 신부 녹색연합 상임대표

조현철 신부 녹색연합 상임대표

‘선언 말고 계획’이란 생각이 든 것은 탈핵을 선언한 문재인 정부가 보여온 이해할 수 없는 수상한 행보 때문이기도 하다. 탈핵 선언 후 이 정부가 한 것은 수명이 다한 핵발전소 영구정지라는 당연한 일이 전부다. 공론화로 신고리 5·6호기 건설이 재개됐고 탈핵은 60여년 후로 미뤄졌다. 탈핵을 선언한 정부가 핵발전을 추진했던 지난 정권에 이어 원전 수출에 공을 들였다. 국정과제라던 ‘사용후핵폐기물 관리정책 재검토’를 위한 공론화는 포화상태에 이른 월성 원전의 임시저장소를 늘리려는 꼼수였다. 핵폐기물이야 어떻게 되든 원전을 계속 가동하겠다는 탈핵 ‘선언’에는 진정성도 의지도 없다.

정부는 경제성장을 하면서 탄소중립을 추진하겠단다. 하지만 성장은 온실가스 배출을 늘릴 수밖에 없다. 성장하려면 생산과 소비를 늘려야 한다. 사람의 욕구를 확대하는 광고 산업이 번창하고, 알고 보면 빚인 신용 구매를 장려한다. 생산과 소비 진작을 위해 제품 수명은 길지 않게 한다. 뭐든 많이 만들되 빨리 쓰고 버려야 한다. 온실가스 등 폐기물은 증가한다. 성장 사회는 필요가 아닌 이윤을 위해 상품을 끊임없이 생산하고 소비하는 사회, 시장에서 사고파는 상품이 아닌 것은 가치가 없어지는 사회다. 한마디로, ‘비정상 사회’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방향으로 자본을 투자하겠다는 기업이 늘고 있다. 하지만 이윤만 보장되면, 다른 것은 사실 기업에 부차적이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대한 기업의 반대와 정부의 미적거림은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보다 이윤을 ‘훨씬 더’ 중시한다는 뜻이다. 기후위기 대응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노후 석탄화력발전소 폐쇄를 말하지만, 발전 규모가 훨씬 큰 삼척을 비롯한 7기의 신규 석탄발전소 건설은 요지부동이다. 한국전력은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의 석탄발전소 건설 사업에 이윤이 난다며 투자를 강행한다. 자본에 중요한 건 탄소배출 감축이 아니라 날로 ‘성장’하는 탄소 시장에서 예상되는 이윤이다.

기존의 성장 논리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대통령의 탄소중립 선언은 탈핵 선언처럼 또다시 ‘선언’에 그칠 것이다. 이제라도 성장과 탄소중립이라는 무책임한 목표를 포기하고 제대로 ‘계획’을 세워야 한다. 지난달, KBS와 그린피스가 함께 실시한 기후위기 인식 조사에서 응답자들은 기후위기(19.2%)를 경제위기(17.7%)보다 심각하게 여겼다. 응답자의 79.1%가 ‘2050년 탄소중립’에 동의했고 다수가 탄소배출 감축에 적극적이었으며 우리 사회의 기후위기 대응 노력이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이만하면 탄소중립의 구체적인 계획을 논의할 상황은 충분히 무르익었다. 필요한 것은 정부의 진정성과 의지다. 시간이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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