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는 지방자치 30년

2020.12.17 03:00 입력 2020.12.17 03:04 수정

지금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그동안 우리는 코로나19 방역을 잘했다고 인정받았다. 어떻게 잘할 수 있었을까? 전문가들의 진단은 대개 일치했다. 훌륭한 의료보험제도, 정부의 선제적 개입, 뛰어난 검진 능력, 치밀한 추적과 투명한 정보 공개 등이 자랑스러운 성과를 낳았다는 것이었다. 침착한 방역 리더십이나 의료진의 눈물겨운 헌신도 손꼽히는 요인이다.

김태일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태일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한 가지 덧붙일 게 있다면 그것은 ‘국가’가 아니라 ‘지방’의 힘이다. 지방은, 모든 것을 걸고 코로나19와 맞서는 투쟁의 장이었다. 바이러스와 싸우기 위해 각종 자원들을 동원, 조직, 배치한 단위도 지방이었고 이웃에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스스로 자기봉쇄를 취한 시민공동체 형성도 ‘지방’에서 이루어졌다.

어느 학자가 우리의 방역 모델은 전체주의 모델도 아니고 시장 모델도 아닌, 모성적 돌봄 모델이라고 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의 설명에 공감했다.

그런데 나는 그 모성적 돌봄 모델도 ‘지방’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본다. 공공의료 자원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민간의료 자원의 신속한 공공전환을 이루어낸 곳도 지방이었으며 생활치료센터, 드라이브 검진이라는 현실적 방책을 신속하게 고안해낸 것도 지방이었다. 그리고 사회안전망이 무너진 끔찍한 상황에 대처한 긴급 돌봄 시스템을 구축한 곳도 지방이었다. 땀과 눈물이 뒤범벅인 협력과 연대의 무대도 지방이었다.

지방자치를 하고 있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는 국가가 할 수 없는 것을 지방이 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지방이 국가의 잔여적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코로나19 시대가 ‘지방’을 재발견했다. 지방이라는 가치는 우리의 생명과 안전, 복지, 행복을 지키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최근에 또 다른 지방의 재발견이 있었다. 국회가 ‘지방자치법 전부개정법률안’을 의결했다. 군부쿠데타로 폐지되었던 지방자치가 민주화 이후 부활하면서 1988년 지방자치법이 제정되었는데, 한 세대가 지난 이 시점에서 전면 개정을 한 것이다.

놀라운 것은,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 문제로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눈에 쌍심지를 켜고 있는 상황에서 이 법안을 충돌 없이 통과시켰다는 사실이다. 알다가도 모를 일이나 어쨌든 잘한 일이고, 이 문제만큼은 모든 정치세력이 ‘지방’의 가치를 인정한다는 징표이다.

지방자치법 전부개정법률안은 크게 두 가지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는 지방분권이다. 지방자치단체에 보다 많은 힘을 주는 일이다. 지방자치단체의 자치입법권을 강화하는 조항이 우선 눈에 띈다. 중앙지방협력회의를 설치하여 지역에 영향을 미치는 국가의 주요 정책결정 과정에 지방의 주요 주체가 참여하도록 한 대목도 새로워 보인다. 지역의 여건에 따라 지자체 기관구성을 다양화할 수 있다는 결정도 지방이 할 수 있도록 했다. 지방의회가 사무국 직원 인사권을 가질 수 있도록 한 것이나 정책 보좌 인력을 두도록 한 것은 지방의회 역량을 강화하려는 조치이다.

다른 하나는 주민 참여자치권의 강화다. 지방자치법에 근거한 주민조례 발안법을 별도로 만들어서 주민들이 직접 조례를 제정, 개정, 폐지 청구할 수 있도록 했다. 조례 안건을 내놓거나 감사를 청구할 때 발의 및 청구인의 상한 기준도 낮추었다. 지자체와 지방의회의 운영에 대해 주민들이 투명하게 알 수 있도록 중요한 활동 상황을 다 공개하는 조항도 만들었다.

수십년 만에 개정한 것 치고는 감질 나는 조치라는 아쉬움도 있고, 지방자치단체의 자치입법권도 더 강화해야 했고, 주민참여를 위한 주민자치회도 만들어야 했다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이번에 통과한 지방자치법 전부개정법률안은 지방자치의 역사에서 의미 있는 진전이라고 생각한다. 20대 국회 끝날 때까지 논란만 거듭하던 안타까운 모습을 기억한다면 21대 국회의 성과는 결코 작은 일이 아니라 하겠다.

민주주의 제도는 두 개의 수레바퀴가 지탱한다고 한다. 하나는 권력기관들 사이의 분립과 견제다. 다른 하나는 권력의 지방분할이다. 검찰개혁이 전자의 사례라고 한다면 지방자치법 개정은 후자에 해당한다.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을 계기로 지금부터는 속도를 내야 할 것이다. 내년 2021년은 지방자치를 다시 시작한 지 30년이 되는 해다. 새해에는 지방의 가치, 지방의 재발견이라는 말을 제대로 되새기는 해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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