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모순된 사고를 가능하게 했을까

2020.12.10 03:00 입력 2020.12.10 03:02 수정

종교계를 비롯해 대학 민주동문회 등의 ‘검찰개혁’ 지지선언이 잇따르고 있다. 예사로 넘기기 어렵다. 지난해 ‘조국 사태’ 과정에서 작가 1276명과 대학교수 4090명 등이 유사한 내용의 지지선언을 했고 서초동 촛불집회에 수만명이 참여했지만 무게감은 이번이 더욱 크다. 과거 민주화운동의 본진이 참여했기 때문이다. 2019년의 지지선언이나 집회는 친민주 성향 지식인들의 ‘자가당착’이나 열혈 민주당 지지자들의 ‘팬심’ 정도로 치부할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그럴 수 없게 됐다. 뒤집어 얘기하면 최근의 지지선언이야말로 지난해 조국 사태부터 시작한 친정부 성향 집단행동의 정신적 배경을 제대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임미리 고려대 연구교수·정치학 박사

임미리 고려대 연구교수·정치학 박사

이들 단체의 지지선언에 대해 평하자면 한마디로 ‘모순’이다. 한 예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지난 7일 “국민이 선출한 최고권력이라도 거침없이 올가미를 들고 달려드는 통제 불능의 폭력성을 언제까지나 참아줄 수 없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검찰에 대한 통제는 최고권력만이 가능하다. 최고권력도 못하는 것을 지지선언으로써 할 수는 없다. 국민의 힘으로 하겠다? 그럴 수 있다. 최고권력이 문제라면 2016년 겨울처럼 나라를 뒤덮는 민심으로 대통령을 새로 뽑으면 된다. 과거 국정원 해체나 공영방송 수호 집회가 대통령 퇴진 구호를 함께 외친 것은 그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처럼 모순된 사고를 가능하게 했을까. 우선, 기억의 고착 이다. 기억의 고착은 시간의 현재화 현상이다. 정부의 부속기관에 불과한 검찰을 대통령과 대등하거나 그 이상으로 설정할 수 있는 것은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 때문이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집단기억이 2019년 조국 지지자들의 기억을 2009년 5월에 고착시키면서 윤석열 총장과 검찰을 대통령과 대등한 관계로 만든 것이다. 이러한 집단기억이 2009년에만 형성된 것은 아니다. 검찰이 아직도 조작간첩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고 서초동 촛불집회에도 국가보안법 피해자들이 다수 참가했다. “한국 검찰의 악행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일지 모른다. 하지만 정부는 그때의 정부가 아니다. 노 전 대통령을 구속수사한 것도 이명박 정부의 검찰이었다. 존재의 상대화가 필요하다.

다음으로는 기억의 고착에서 비롯된 것으로 피해자(또는 희생자) 의식이다. 처음에는 인사권 박탈이었고, 그다음에는 특정 사건에 대한 수사지휘권 박탈, 마지막으로 직무정지였다. 비상시국도 아닌데 윤석열 검찰총장 한 명을 겨냥한 ‘사상 초유’가 잇따랐다.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관계에서 일방적으로 한쪽을 몰아붙인 것은 윤 총장이 아니라 추미애 장관이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세 번째 민주계 정부가 들어섰다. 검찰도 유신이나 5공화국의 검찰이 아니라 문재인 정부의 검찰이다. 집권 3년차를 넘었고 역대 최다득표로 당선된 대통령이다. 아직까지 통치기구를 장악 못했다면 그 또한 문제다.

마지막으로 패권주의다. 지지선언문에 적시된 것은 아니지만 민주당과 지지자들에게 힘을 실어준다는 측면에서 효과는 같다. 윤 총장뿐 아니라 그의 퇴진에 반대하는 사람 모두를 적으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금태섭 전 의원이 민주당에서 추방된 것을 포함해 진중권, 권경애 등 여러 사람이 공격을 당했다. 이들이 반대했던 것은 검찰개혁이 아니다. 공수처 설치를 검찰개혁과 등치시킨 일, 조국 전 장관을 검찰개혁의 유일한 적임자로 간주해 법무부 장관 임명을 강행한 일, 윤 총장을 무리하게 직무정지시킨 일 등을 반대한 것이다. 이견을 허용하지 않은 것이고 배경은 패권주의다. 패권주의는 힘으로 내부의 이질성을 무화시켜 집단의 동질성을 보존하고자 한다. 그것에 실패하면 이질적인 것을 적으로 간주해 아예 집단 밖으로 추방해버린다. 작년부터 1년여 동안 계속된 이른바 민주진영 내부의 갈등, 그 과정에서 반조국 또는 친윤석열 그룹에 대한 공격이 바로 그렇다.

솔직해지자. 1년여째 계속된 친여 세력의 집단행동은 여론에서 밀렸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 또 여론이 부정적인 것은 수행 과정과 방법에서 명분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검찰개혁만 부르짖고 있다. 금 전 의원 말마따나 “눈먼 붕어”격이다. 또 민주당 초선 의원들은 “지지율 등락에 일희일비할 필요 없다”고 하고 모 의원은 지지율 하락이 “공수처법 지지부진과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미온적 대처에 따른 지지층의 실망감 표출”이라고 했다. 눈앞의 현실을 외면하고 여론을 호도해선 안 된다. 국민은 바보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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