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이어가는 거지

2020.12.31 03:00

버스를 기다리는데 마스크를 비집고 또렷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진짜 지긋지긋하다.” 소리의 진원지를 찾고자 서로가 고개를 돌리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마스크로 가려져 정확히 표정을 읽을 순 없었으나 자신은 결코 그 말을 한 장본인이 아니라는 눈빛이었다. 때마침 정류장에 칼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외투의 지퍼를 끝까지 끌어올리고 장갑을 단단히 꼈다. 잠시 후 버스가 한 대 도착했고 몇몇이 탑승했다. 남은 이들은 왠지 좀 더 외로워졌다.

오은 시인

오은 시인

지긋지긋하다는 것은 진저리가 날 정도로 괴롭고 싫다는 것이다. 그것은 순간적인 충동에 의해 발설되는 말이라기보다 묵은 감정이 기어이 터져 나오는 것에 더욱 가깝다. 쌓이고 쌓이다가 무릎까지 쌓인 눈처럼, 뭉근하게 끓다가 마침내 흘러넘쳐버린 물처럼. 마스크를 썼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말이 아니라, 마스크를 뚫고 나올 수밖에 없을 만큼 절박한 말일지도 모르겠다. 싫음과 괴로움을 다스리는 일이 길어지면 그 누구라도 지칠 수밖에 없다.

버스에 오르니 안경에 김이 서렸다. 겨울이면 으레 경험하는, 안경을 쓴 이들에겐 익숙한 상황이다. 반면 코로나19와 함께 사계절을 보내고 있지만 어색함은 여전하다. 익숙하다고 말하는 순간, 이 시기가 기약없이 길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든다. ‘팬데믹(pandemic)’은 세계적으로 감염병이 대유행하는 상태를 가리키는 용어다. 생활 전반에선 유행의 주기가 점점 짧아지지만, 감염병 영역에서만큼은 아닌 모양이다. 유행이 지난 옷이나 유행에 맞지 않는 말처럼, 코로나19가 멀어질 날을 그려보았다. 이 또한 어색하긴 매한가지였다.

온종일 집에 있게 된 아이들은 요즘 입버릇처럼 “지겨워”를 말한다고 한다. 비대면 수업에 지친 아이들에게 어른들은 집에 있어서 편하지 않느냐고, 어서 공부하라고만 한다. 아이들이 가장 바라는 것은 학교에 가는 것, 학교에 가서 친구들을 만나는 것이다. 학교가 공부만 하는 곳이 아님을 우리는 누구보다 잘 안다. 학교에 다녀온 날이면 기분이 날아갈 듯 좋다는 아이들에게, 어쩌면 어른들의 변하지 않는 태도가 가장 지겨울지도 모르겠다.

“코로나19 때문에”라는 말이 지겨워졌다는 얘기도 들린다. 평상시와는 다른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참을성이 바닥난 것이다. 지긋지긋함과 지겨움을 토로하면서 하루가 간다. 집에 돌아오는 길, 세탁소에 맡긴 옷을 찾으러 갔다가 어르신이 은퇴 이야기를 하시는 것을 들었다. “오래 했어, 정말.” 50여년간 옷을 빨고 다리고 늘리고 줄이고 보풀을 제거하는 일을 해왔다는 말씀을 듣고 절로 경건해졌다. 그분 앞에서 감히 지긋지긋함이나 지겨움 같은 단어를 꺼낼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가 쓴 장편소설 <다시, 올리브>(문학동네, 2020)에는 노년기에 접어든 올리브가 등장한다. 사춘기가 혼란스럽듯 노년기 또한 여러모로 힘들다. 신체적으로 쇠약해지는 것은 물론 죽음 또한 추상적인 것이 아닌 눈앞에 다가온 듯 생생해진다. 정신적으로 평온한 시기라고 여겨지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크고 작은 파도를 넘어야 한다. 타인과의 교류를 통해 올리브는 깨닫는다. 남을, 무엇보다 스스로를 이해하는 일에는 고통이 따른다는 것, 그러나 그로 인해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절대 다시 시작하는 게 아니야, 신디. 계속 이어가는 거지.” 책의 중반부에 등장하는 올리브의 저 말이 내게는 무척이나 희망적이었다. 삶은 기쁨뿐 아니라 슬픔과 불안도 끌어안아야 계속될 수 있는 것이므로. 이듬해에 대한 희망을 품기 위해서는 올해를 응시하지 않으면 안 되므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개운하게 내일을 맞이할 수는 없다. 중요한 뭔가가 중단되었음에도 우리가 삶을 계속 이어가고 있었음을 떠올려야 한다.

올해의 마지막 날도 새해의 첫날로 묵묵하게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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