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결 투표의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 이유

2021.04.01 03:00 입력 2021.04.01 03:04 수정

우리는 무언가를 결정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수렴해야 할 때가 많다. 이때마다 즐겨 사용하는 방식이 다수결투표이다. 하지만 정작 우리들은 다수결투표 결과가 맘에 들지 않을 때가 많다. 이러한 현상은 무엇에 기인한 것일까?

박정호 명지대 특임교수

박정호 명지대 특임교수

많은 경제학자들은 과반수투표가 내포하고 있는 이러한 한계점을 일찍부터 인지하고 있었다. 그중 하나가 1972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케네스 애로 교수가 제시한 ‘불가능성의 정리(impossibility theorem)’ 이론이다. 완벽한 의사결정 방식으로 평가받기 위해서는 민주적이면서도 효율적으로 집단의 의사결정을 도출할 수 있어야 하지만, 그런 의사결정 방식은 없다는 것이다. 즉 효율적 의사결정 방식은 민주적이지 못하거나, 반대로 민주적 의사결정 방식은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님, 큰형, 작은형, 누나, 나 그리고 동생까지 포함해서 총 9명의 식구가 투표를 통해 새로 이사할 동네를 결정하기로 했다고 하자. 그런데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부모님은 오래전에 거주했던 동네인 강북 지역을 가장 선호하고 뒤이어 강남, 강서 순서로 선호도를 보였다. 반면 형들과 누나는 친구들과 놀기 편한 강남 지역을 가장 선호했으며 뒤이어 강서, 강북 순으로 선호도를 보였다. 나와 동생은 친구들이 많이 살고 있는 강서 지역을 가장 선호했으며 뒤이어 강남, 강북 순으로 선호도를 보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해당 가족이 다수결로 이사 지역을 결정하면 아버지와 어머니, 할머니, 할아버지가 1순위로 선호하는 강북으로 결정될 것이다. 일견 이러한 의사결정은 온 가족의 민주적인 다수결투표에 의한 내용이므로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인다. 강북 지역으로 이사하는 것이 정말 이 가족이 원하는 결과일까? 만약 나와 동생이 강서 지역을 투표 후보군에서 빼자고 주장하여 강북과 강남만을 두고 투표하는 상황으로 바뀌었다고 가정해보자. 이 경우 아버지와 어머니, 할머니, 할아버지는 기존대로 강북에 투표할 것이며, 누나와 두 형은 강남에 투표할 것이다. 하지만 나와 동생은 강서 지역이 없어졌기 때문에 2순위에 해당하는 강남에 투표하여, 결국 투표 결과는 강북 4명, 강남 5명으로 뒤바뀌게 된다. 이번에는 누나와 두 형이 동생들을 위해 자신들이 선호하는 강남 지역을 배제하고 투표를 했다고 가정해보자. 이 경우 누나와 형들은 자신들이 2순위로 선호하는 강서 지역에 투표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강서 5명, 강북 4명으로 투표 결과가 다시 뒤바뀐다.

이는 이들 가족 대부분이 실제로는 강북보다 강남이나 강서 지역을 더욱 선호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이와 함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세 지역을 대상으로 한 투표 결과 이러한 개인의 선호와는 상반된 강북으로 결정되었다는 사실이다. 민주적인 방식의 가족 투표 결과가 가족들의 선호도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것이다. 이러한 사실로 우리는 왜 민주적인 방식으로 선출된 우리 동네 대표가 맘에 안 드는지, 왜 민주적인 가족 투표 방식으로 선택한 이사 지역이 마음에 안 드는지를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이처럼 케네스 애로 교수의 불가능성의 정리는 단순 다수결투표제뿐만 아니라 우리가 활용하고 있는 다양한 의사결정 방식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완벽하고 이상적인 방식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준다.

그리고 더 나아가 완벽한 의사결정 방식은 애당초 기대해선 안 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렇다고 많은 경제학자들이 손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보다 개선된 투표제도 내지 집단 의사결정 방법을 제시하기 위해 밤새 연구하는 학자가 수없이 많다. 언젠가 또 다른 천재 경제학자가 등장해 만족할 만한 의사결정 프로세스를 제시해주길 고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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