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덕산 기슭 해월 최시형의 묘에서

2021.04.27 03:00 입력 2021.04.27 03:01 수정

[이굴기의 꽃산 꽃글]천덕산 기슭 해월 최시형의 묘에서

하늘이 저 위에 있는 건 참을 수 없는 부끄러움이 몰려올 때 쳐다보라는 비상구. 의례적인 인사가 아닐지라도 그래도 죄송하다는 말은 입 가까이에 두고 살았다. 잘못은 옛날의 일이고, 그 잘못이 생각나는 건 오늘의 일이다. 갈수록 뻔뻔해지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는 와중에 죄송스럽다는 그 단어를 또 이렇게 만나고 보니, 내 오합지졸의 생각들이 일거에 난처한 지경으로 머쓱해진다. “니체를 읽으면 수운이 보이고 수운을 보면 형편없는 나의 몰골이 떠오른다. 비록 보잘것없이 살고 있는 것이 죄송스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수운이 예전에 밟은 땅을 지금 딛고 산다고 생각하면 언제나 황홀하게 자랑스럽다.”(김인환 산문, ‘동학과 더불어’)

동학은 늘 마음 한구석에 공부의 주제로 삼은 바가 있지만 이내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고전읽기 모임에서 향아설위(向我設位)의 어마어마한 세계에 대해 탄복한 적도 있지만 그때뿐이었다. 그런 것이 쌓이고 쌓여 저 문장마저 외면할 수 없었나 보다. 열석 자 동학의 주문으로, 경전을 비롯한 몇 권의 책으로 속절없이 빨려들어갔다. 그리고 만난 최시형 제2대 교조. 순교 직전에 찍힌 마지막 사진은 한 인간의 성스러움을 넘어서는 그 무언가가 있어 옷깃을 여미게 했다. 그간 꽃 보겠다고, 나무 공부 한다고 산을 많이 어지럽혔다. 무심코 다닌 곳이 동학의 피난로와 지척인 곳도 많았다. 영월, 인제, 정선 등을 돌아다닐 때 저 고난의 흔적에 좀 생각도 해가며 좇을 것을. 뒤늦게 퍽 죄송스러웠다.

급히 충주에 가다가 어림해보니 바로 딱 중간에 해당하는 곳이었다. 여주군 금사면 주록리 천덕산 기슭을 오른다. 그저 무심한 나무들과 여여한 풀들. 변하는 건 어지러운 내 마음뿐이다. 최보따리인문학의 순례객들이 다녀간 표지가 있다. 해월신사 최시형묘. 사무실 한편에 모신 사진 속 퉁퉁 부은 발을 떠올리자니 절은 맨발로 해야 했다. 감히 따라해본다. 비록 형편없는 몰골로 보잘것없이 살고 있는 것이 퍽 죄송스럽지만 이제부터라도 강원도 산에 갈 때면 최보따리의 흔적에 발걸음을 포개는 심정으로 다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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