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당신은 누구입니까?

2021.06.28 20:34 입력 2021.07.14 16:10 수정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하 호칭 생략)이 오늘(29일) 정치 참여를 공식 선언한다. 대선 주자급 정치인에 대해 글을 쓰기 위해 관련 기사나 자료를 검색하면 너무 많은 기사·자료가 쏟아져 취사선택에 애를 먹곤 했다. 이번엔 달랐다. 분량은 엄청났으되, 참고할 만한 내용은 많지 않았다.

김민아 논설실장

김민아 논설실장

특정 인물이 대선 주자 반열에 오르기까지는 수많은 검증 과정을 거친다. 직업적 경력, 정치 입문 이후 경력, 정책, 성과, 과오, 가족, 측근, 리더십, 화법, 스캔들…. 시시콜콜한 사안까지 검증 대상으로 삼는 이유는 주권자 A에겐 변수가 되지 않는 정보가 주권자 B에겐 선택을 좌우하는 정보가 될 수도 있어서다. 그런데 지금 ‘정치인 윤석열’에 대해 시민이 공유하는 정보는 제로에 가깝다.

오늘 윤석열의 기자회견을 통해 가장 알고 싶은 것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윤석열은 어떤 나라를 꿈꾸는가. 그가 검찰총장을 사임할 무렵부터 일관되게 밝혀온 메시지는 공정과 상식이다. 지금 공적 발언권을 가진 사람이라면 너나없이 공정을 말한다. 문제는 ‘어떤 공정인가’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공정은 ‘능력’에 따른 공정이다.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시험(성적)’을 잣대로 삼는 공정이다. ‘능력’을 ‘시험’하는 과정과 절차가 공정하면 사회·경제적 약자와 소수자도 정당한 기회를 누릴 수 있다고 본다. 윤석열도 여기에 동의하는가? 윤석열이 만들고 싶은 ‘공정한 나라’는 구체적으로 어떤 나라인지 궁금하다.

둘째, 윤석열은 누구를 대표하는가. 윤석열 측은 “중도와 합리적 진보까지 포괄하는 압도적 정권교체”(이동훈 전 대변인)를 언급한 바 있다. 보수와 중도 표심을 기반으로 문재인 정권에 비판적인 진보까지 잡겠다는 것이다. 만약 실현된다면, 이명박 전 대통령이 정동영 후보에게 압승한 2007년 대선을 넘어서는 결과도 가능할지 모른다. 그러나 현재의 이념적 스펙트럼은 14년 전보다 훨씬 복잡하다. 아니, 지금의 표심은 보수·중도·진보라는 기존 잣대로 구분하기조차 어렵다. 경제·사회 이슈에선 진보적이되 외교·안보 이슈에선 보수적인 주권자가 상당수이다. 그 반대도 많다. 안철수는 한때 극중주의(極中主義)까지 내걸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인구 5182만명, 18세 이상 선거권자 4399만명(지난해 총선 기준)인 나라에서 모두를 대표하는 일은 가능하지 않다. 그건 아무도 대표하지 않겠다는 말과 마찬가지다. 윤석열이 진정으로 대표·대리하고자 하는 시민이 누구인지 궁금하다.

셋째, 윤석열은 어떤 ‘태도’를 가진 정치인인가. 최근 이른바 ‘X파일’ 논란이 불거졌다. 파일에 담긴 내용이 사실인지 허위인지, 사실이라면 도덕성 측면에서 선을 넘었는지 아닌지, 더 나아가 실정법 위반 소지가 있는지 없는지는 따져야 옳다. 작성·유포 과정도 규명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나는 파일 내용보다 파일을 대하는 윤석열의 태도에 관심이 간다. 그는 지난 22일 대변인을 통해 배포한 입장문에서 이렇게 밝혔다. “출처 불명 괴문서로 정치공작 하지 말고 진실이라면 내용·근거·출처를 공개하기 바람. 공기관과 집권당에서 개입해 작성한 것처럼도 말하던데, 그렇다면 명백한 불법 사찰임.” 보고서 스타일의 개조식(個條式) 문장도 낯설지만, 메시지의 ‘톤’은 더 생경하다. 개인적으로 억울할 수도 있겠으나, 대통령이 되려는 정치지도자라면 보다 낮고 겸손한 태도를 보였어야 한다. 정치에서 이슈 자체도 중요하지만, 이슈를 다루는 태도는 훨씬 더 중요하다. 기자회견에서 직접 X파일에 대해 언급할 그 순간을 주목하는 이유다.

2013년 10월21일 국회 국정감사장에 선 윤석열은 국가정보원 직원 체포영장 집행에 대해 질문받고 답한다. “표범이 사슴을 사냥하듯 신속한 수사가 필요했습니다.”

독일 사상가 막스 베버의 유명한 비유가 떠오른다. “정치란 열정과 균형감각 둘 다를 가지고 단단한 널빤지를 강하게 그리고 서서히 뚫는 작업이다”(<소명으로서의 정치>). 한 인물이 대선 주자로 부상하는 데는 표범과도 같은 결기와 열정만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대통령이 되는 일은 그것만으로 부족하다. 국가 최고지도자는 열정을 갖고 강하게, 동시에 균형감각을 갖고 서서히 널빤지를 뚫어야 한다. 지금 당장 시민들이 겪는 일상의 고통을 해결하는 디테일의 끝판왕이자, 수십년 후 미래를 내다보고 준비하는 커다란 비전의 설계자여야 한다.

궁금하다. 윤석열, 당신은 누구입니까?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