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 오션’ 20대 여성

2021.07.19 20:36 입력 2021.07.19 21:01 수정

여론조사업체 한국갤럽은 매달 1회 첫 주에 차기 정치지도자 선호도 조사 결과를 공개한다. 선호하는 대선 주자를 자유롭게 답하는 방식이다. 지난 2일 나온 7월 조사 결과를 보면 ‘의견 유보’가 응답자의 32%였다. 주목할 대목은 성별 격차다. 남성은 24%인 데 비해, 여성은 40%나 됐다. 세대별로는 20대의 55%가 의견을 유보했다(자세한 내용은 한국갤럽 홈페이지 참조). 모든 요소를 감안하면, 20대 여성의 ‘지지 후보 없음’이 얼마나 높을지 짐작할 만하다.

김민아 논설실장

김민아 논설실장

원인은 어디 있을까. 익명을 요구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여성 유권자에게 어필할 후보가 별로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7월 첫 주 조사에서 지지율 1% 이상을 얻은 후보 9명(윤석열·이재명·이낙연·최재형·이준석·정세균·홍준표·추미애·안철수) 가운데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많은 지지를 받은 사람은 이낙연 후보뿐이다. 이 전문가는 “이낙연 후보도 개인 지지층만 분석하면 여성이 앞서지만, 전체 여성을 놓고 분석하면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정치학자인 김형준 명지대 교수의 분석(여성신문 칼럼)도 유용하다. 김 교수가 여야 주요 대선 주자들의 출마선언문을 살펴본 결과 “여성이 사라졌다”. 그는 “정치권이 갖고 있는 ‘이대남(20대 남성) 현상’에 대한 무지와 착각” 때문에 젠더 이슈가 실종됐다고 해석했다. 김 교수는 한국갤럽 7월 첫 주 조사 결과를 인용해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해 20대의 5%만 ‘잘하고 있다’고 했다”며 “20대의 (여당 지지층) 이탈은 부동산 실정과 같은 무능이 희망을 빼앗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20대 남성이 문재인 정부의 여성친화 정책에 반발해 지지를 철회했다는 주장은 오류라는 것이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경선 과정에서 한 강성 지지자가 제작한 ‘군필 원팀’ 포스터가 논란을 일으켰다. 본경선 후보 6명 중 이낙연·정세균·김두관·박용진 후보 사진과 함께 ‘정책은 경쟁해도 안보는 하나/ 더불어민주당 군필 원팀/ 민주당의 소중한 자산·강한 안보’라는 글귀가 담겼다. 장애로 군에 ‘못 간’ 이재명 후보와 여성이어서 ‘면제된’ 추미애 후보는 ‘원팀(one team)’에서 간단히 배제됐다. 민주당이 소수자 차별 문제에 대해 단호하고 일관된 입장을 견지해왔다면 열성 지지자가 이런 시도를 할 수 있었을까.

국민의힘 쪽은 더욱 심각하다. 대선 주자들이 “여성가족부 폐지”(유승민 전 의원)에 이어 “남녀 모두 징병하되 임신·출산 여성은 면제”(하태경 의원)라는 주장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오죽하면 윤희숙 의원이 “국민의힘은 20대 여성에게 어필을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적개심을 느끼게 만든다”(연합뉴스 인터뷰)며 자성했겠는가.

한국여성학회 회장을 지낸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여야 불문하고 유력 주자들이 젠더 이슈와 관련해 판단할 근거조차 제공하지 않고 있다”면서 “여성들이 마음 줄 곳이 없어 표가 붕 뜬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신 교수는 “후보들은 ‘나는 젠더 문제를 이렇게 본다. 앞으로 이렇게 가겠다’는 퍼스펙티브(관점)를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폐쇄회로(CC)TV를 늘리겠다는 식의 미시적 정책 대신 거시적 비전과 철학을 제시하는 게 우선이라는 것이다. 특히 청년여성들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줘야 한다고 촉구했다.

20대 여성은 지난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선명한 정치적 의사를 표명했다. 출구조사 결과 15.1%가 민주당도 국민의힘도 아닌 제3후보를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선이 끝난 후 20대 여성 8명을 인터뷰했다. 26세 취업준비생은 정치권의 이대남 현상을 “기약 없는 짝사랑”이라 표현했다. 당시 만난 27세 회사원과 최근 다시 메신저 대화를 나눴다. 서울시장 보선에서 여성의당 김진아 후보를 찍었던 그는 “대선에서도 여성 문제를 포함해 다양한 인권 이슈를 공론화하는 후보를 지지할 생각”이라고 했다.

2017년 대선 투표율은 여성이 77.3%, 남성이 76.2%였다. 50대 이하 모든 연령층에서 여성 투표율이 남성보다 높았다. 특히 25~29세는 여성과 남성의 투표율 격차가 7.9%포인트까지 벌어졌다.

숫자는 정직하다. 거짓말하지 않는다. 20대 여성은 정치적으로 각성했다. 서울시장 보선을 통해 존재감도 입증했다. 투표 참여 성향도 높다. 그럼에도 아직 지지할 후보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야말로 ‘블루 오션’이다. 근거도 미약한 이대남 신화에서 깨어나 20대 여성에게 응답할 후보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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