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꿈은 1.5룸

2021.07.20 03:00 입력 2021.07.20 03:02 수정

옷장을 새로 들였다. 폭 80㎝, 높이 186㎝. 메이플 색상, 한쪽 문은 전면 거울. 거울이 화룡점정이다. 5.4평 원룸의 가장 깊은 부분을 관통해 맞은편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을 반사하여 공간을 더욱 환하게 만든다. 실제보다 넓어 보이는 착시효과도 준다. 이 옷장을 고른 스스로가 기특했다. 새 옷장은 삶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감각과 함께 일종의 성취감마저 줬다. 그래, 이건 분명 행복에 가까운 감정이다. 옷장 하나로 행복해지는 나, 비정상인가요?

최서윤 작가

최서윤 작가

이 지면을 통해 ‘5평 주택 논쟁’을 소개한 적 있다. 2019년이었다. 어떤 트위터 이용자가 역세권 청년임대주택으로 제공되는 대부분이 5평 내외 원룸이라며 “청년주택에서 행복을 꿈꿀 수 있을까?”라는 자문과 “누구든 좁고 작은 방에 사는 게 괜찮을 리 없다”는 자답을 남겼다. 해당 트윗은 논쟁을 일으켰고, 5.4평 거주자로서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정작 본인은 괜찮은데, 타인에 의해 ‘괜찮지 않은’ 존재로 규정당하는 게 지긋지긋했다. 좁고 작은 방에 실제 살고 있는 사람이 그 말을 들으면 상처받을 수 있으며, 좁아도 다른 조건이 충족되면 기쁨과 만족을 얻을 수 있다는 내용의 글을 썼다. 행복을 느끼고 있는 나를 보니 그때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그때보다 바라는 게 많아지긴 했다. ‘거리 두기’ 영향도 있다. 영화관이나 극장에 자주 가지 못하고 집에 머물다 보니 대형TV, 비디오게임 콘솔, 소파가 간절해졌다. 자주 집에서 식사하다 보니 식탁 없이 책상만 있는 게 아쉽기도 했다. 아무래도 돈을 모아 다음에는 9평 1.5룸으로 이사 가야겠다. 5년 정도 모으면 가능할까?

그래도 지금 공간, 여전히 사랑한다. 처음으로 주거안정성을 느끼게 해준 곳이다. 나는 이 원룸을 ‘내집마련 디딤돌 대출’로 매입했다. 인생의 가장 큰 공포를 소거한 덕에(청소년 때부터 홈리스 되는 게 두려웠다) 현재의 행복을 놓치지 않으며 ‘다음’을 꿈꾸게 됐다고 생각한다.

TMI였나? 한국 사회 분위기 때문에 말해봤다. 자기 기준에 맞지 않는 삶을 사는 타인은 불행할 거라고 판단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 기준은 심지어 획일적이다. 예를 들어 서울의 아파트만이 집이라는 기준. 그 외 주택에 대해서는 “어떻게 그런 데 살아?”라고 묻고 ‘빌라 거지’라는 딱지를 붙이는 이들. 그러나 30~40대에 아파트를 구매할 수 있는 계층은 상위 10%이며, 많은 경우 증여나 상속의 도움을 받는다. 왜 이들의 기준이 사회 전체를 장악해야 하지?

본질을 따져보자. 2019년 주거실태조사에서 주택을 보유하고자 하는 이유로 가장 많이 꼽힌 것은 ‘주거 안정(89.7%)’이다. 각자 사정에 맞게 다양한 형태로 주거 안정을 획득하면 되는 것 아닌가? 세심한 정책으로 이를 돕고, 개인은 남들 시선 신경 쓰지 않고 무엇이 중요한지 스스로에게 물어 가용 자원 내에 최선을 택하는 것. 그리고 그 상태는 고정 불변이 아니며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것. 그 믿음을 사회가 줘야 한다. 다양한 삶이 ‘불쌍 프레임’ 아닌 방식으로 노출되면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며 이 글을 썼다. 누군가는 불쌍하게 보는 주거 형태이지만 사실 나는 제법 행복하다. 1.5룸에 살면 더 행복해질지도? 더 행복해질 일이 남아서 행복하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