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물 쓰레기의 ‘대변신’

2021.08.20 03:00 입력 2021.08.20 03:02 수정

최근 나는 친구들과 함께 사는 공동주택으로 이사했다. 줄곧 옆집 숟가락 개수까지 아는 시골(?) 공동체는 취향이 아니라고 부르짖었건만 숟가락 개수는 물론 현관 비밀번호를 알고 아침도 얻어먹는 삶을 살고 있다. 발단은 이렇다. 도시의 차가운 음식물 쓰레기 분해자로서 살던 어느 날, 퇴비화가 끝나가던 흙을 공동주택 화단에 묻다 이웃에게 고발당할 뻔한 일을 겪었다. 타인의 무관심이 매력이던 도시는 ‘쓰레기 덕후’인 내 정체성을 여지없이 짓밟았다. 음식물 쓰레기를 흙으로 만든다는 말을 내뱉자 더럽고 혐오스러워서 견딜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결국 음식물 쓰레기를 퇴비로 만들자는 말에 흥분하는 친구들을 찾아 이사를 나왔다.

고금숙 플라스틱프리 활동가

고금숙 플라스틱프리 활동가

쓰레기 덕후로서 말하건대 음식물 쓰레기처럼 매력적이고 신비로운 존재는 없다. 내 손안에서 유기물의 물리적이고도 화학적인 변태를 경험할 수 있다. <나를 미치게 하는 정원이지만 괜찮아>의 작가는 씨앗이 토마토와 상추가 되는 과정은 너무나 환상적이고 불가사의해서 도저히 이해할 재간이 없다고 했다. 나는 음식물 쓰레기가 흙이 되고, 그 흙에서 수박씨가 발아해 새끼 수박을 잉태하는 과정이 너무나 환상적이고 불가사의해서 미칠 것만 같았다. 그가 작물을 일구며 텃밭 한가운데에서 실존주의자가 되었듯 나 역시 음식물 쓰레기를 통해 대자연의 카뮈와 사르트르를 경험한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음식물 쓰레기는 냄새와 오물, 혐오의 대상이다. 한 재활용 업체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섞어주는 기계의 교반 날개 회전축에 봉지가 끼어 기계가 멈췄다. 기계를 음식물 쓰레기가 가득 찬 풀 안으로 헤엄쳐 들어가 비닐을 제거하는 것이다. 비닐을 제거하려고 음식물 쓰레기 풀에 들어간 한 노동자가 쓰레기가 내뿜는 가스에 정신을 잃고 그 안에 빠졌다. 병원에 실려 왔을 때 그는 세상에서 가장 지독한 냄새를 풍기며 입·코·귀에 음식물 쓰레기가 가득 찬 채 뇌사상태가 되었다. 그 정도는 아닐지라도 선별장에는 노상 음식물 쓰레기를 손으로 뒤적여 이물질을 골라내는 사람이 있다. 어떤 사물도 내재적 특징만으로 쓰레기가 되지 않는다. 어떤 장소에 놓이고 어떤 취급을 받는가에 따라 쓰레기가 될 뿐이다.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쓰레기장에 도착하기 전까지 원래 쓰레기인 존재는 없다고 말한다.

전체 쓰레기 중 생활계 폐기물은 20%가 채 안 된다. 페트병 고리를 뜯다 칼에 베여본 열혈 분리배출자에게는 유감이지만, 소소한 실천보다 사업장과 건설 폐기물을 줄이는 일이 중요하다. 하지만 음식물 쓰레기는 다르다. 생활 폐기물의 약 25%를 차지하는 음식물 쓰레기의 70%가 가정과 소형음식점에서 나온다. 이 중 약 80%가 폐수가 되고 퇴비화하기 좋은 조리 전 음식물 쓰레기가 57%나 된다. 이것의 물기를 제거하면 최대 80%까지, 가정과 소형음식점만 참여해도 70%까지 음식물 쓰레기를 줄일 수 있다. 가장 가성비 높은 분리배출, 우리 하기 나름인 폐기물이 바로 음식물 쓰레기다.

그리하여 도시 한복판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흙과 반려식물로 키워내는 황홀한 작당을 같이할 사람을 찾는다. 인도에 갔더니 마을 사람들 모두 동네 공원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퇴비로 만들고 있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동네가 필요하듯 음식물 쓰레기를 흙으로 되돌릴 때도 이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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