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속 은행은 망하지 않는다

2021.09.04 03:00 입력 2021.09.04 03:02 수정

20세기 초반 미국 철도부설 시기를 다루는 건설경영 시뮬레이션 게임 ‘레일웨이 엠파이어’에서 플레이어는 철도회사 하나를 맡아 역과 철로를 깔고 여객과 화물을 실어나르며 돈을 벌어야 한다. 철도는 인프라 산업으로 막대한 초기투자 비용이 들어가는지라 초기에 주어진 자본만으로는 빠르게 철도망 확장을 가져갈 수 없기에 대부분의 플레이에서 플레이어들은 은행으로부터 크게 대출을 받아 자금을 운용한다. 말 그대로 대출이기 때문에 매달 이자가 줄줄 빠져나가는 관계로 적절한 초기 투자를 통해 수익 창출을 제때 이뤄내지 못한다면 큰 대출은 오히려 게임을 망치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 게임 안에서 은행과 대출의 존재는 비단 이 게임 하나에서만은 아니다.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게임이라면 ‘심시티’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경혁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이경혁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도시를 건설하고 운영하는 시뮬레이션게임의 대표작인 ‘심시티’에서도 은행은 플레이어의 중요한 파트너로 등장한다. 발전소나 공항, 고속도로 같은 단일 인프라뿐 아니라 대규모로 거대한 신도시 계획을 잡을 때 필요한 자본을 플레이어들은 게임 속 은행을 통해 조달한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대규모 대출은 높은 기대효과만큼의 높은 위험을 가진다. 공들이고 돈들인 새 구역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으면 늘어나는 이자와 줄어드는 세수가 겹치며 순식간에 파산에 이르러 게임오버가 되는 일을 보는 것이 어렵지 않다.

흥미로운 점은 플레이어에게 돈을 빌려주는 은행이 망하는 경우는 게임에서 보기 드물다는 점이다. 현실을 100% 동일하게 담아낼 수는 없지만, 현실의 모사와 재현이라는 점에서 게임 속 은행이 결코 망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현실의 은행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드러내는 효과를 갖는다. 심지어 은행이 망할 때에는 사회 전반의 금융체계 붕괴라는 이름으로 막대한 금액의 공적자금을 투여해 살려내었던 기억을 우리는 IMF 금융위기 이후로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다.

무적의 불패신화로서 은행은, 모든 것을 멈춰세워야 한다는 전제가 최우선순위에 올라온 팬데믹 시국에서도 멈추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생업이 걸린 동네의 작은 골목식당과 허름한 대폿집들까지도 팬데믹이라는 위기 앞에 수익활동을 멈추는 상황에도 여전히 대출이자는 고스란히 나간다. 매 순간 돌아오는 대출이자는 하루 영업시간이 얼마가 깎였건 전혀 깎이지 않는다.

건물주들도 ‘착한 임대료’라는 이름으로 눈총을 받지만, 그 건물주들 또한 대출이자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고통분담이라고 꺼내든 대책이라는 것이 겨우 만기와 납입기한의 연장인데, 기한연장도 금리상으로는 혜택이라고는 하지만 글쎄, 2021년 상반기 은행 실적을 한번 보기를 권한다. 신기한 것은 공적 담론에서 이들 금융권의 고통분담에 관한 이야기는 수면 위로 잘 올라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팬데믹 극복의 희생양으로 자영업자의 손발을 묶었지만, 그들의 등에 꽂힌 빨대는 팬데믹이건 뭐건 멈추지 않는다. 게임 속 은행이 망하지 않는 이유는 매우 명백하다. 현실의 은행이 손해보지 않기 때문이다. ‘심시티’의 은행은 좀비가 창궐해 도시가 폐허가 돼도 망하지 않는다. 현실의 팬데믹에서도 그러한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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