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념으로부터 틔우는 ‘웃음’

2021.11.08 03:00 입력 2021.11.08 03:02 수정
남웅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활동가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한반도를 대각선으로 걷는 두 활동가의 장정이 끝나간다. 사람들은 걸음마다 남긴 생각과 기록을 실시간으로 훑으며 호흡을 함께하는가 하면, 걸음 이후의 활동을 기획한다. 이제야 국회가 본격적인 논의의 신호를 보내는 상황은 차별금지법 제정이 목전에 왔음을 실감케 한다.

남웅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활동가

남웅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활동가

그 와중에도 이어지는 회의에서는 상황이 고착되고 후퇴할 수 있는 경우의 수를 전제에 둔다. 차별금지법 제정 요구가 14년을 넘었지만 대선 후보가 동성애 합법화와 합의를 운운하는 현실에서 부정적 결과를 예측하는 건 무리도 아니다.

인권·사회운동은 크고 작은 성과를 남겨온 만큼 부침과 굴곡진 궤적을 그려왔다. 강고한 위계 속에 판에 박힌 반대논리가 여론을 휘젓는 동안 책임 주체는 입장을 회피해 왔다. 후퇴가 익숙해진 상황은 체념의 정조를 스며들게 했고, 이는 활동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회의는 길어지고 논의는 공회전하기 쉬웠다. 물러설 수 없는 상황에서 활동의 동력은 쥐어짜듯 나오기가 다반사였다.

체념의 정조는 이미 운동만의 사정이 아니다. 주류 질서와 이성애·비장애 정상성의 논리, 시장경제와 노동 불안정성으로부터 제 지분을 갖지 못할수록 자신을 설명하고 요구하는 노고와 필요는 높아진다. 하지만 들어줄 귀는커녕 거리에 나와 권리를 요구하는 것만으로 공격받기 쉽다. 아는 것이 힘이라고 하지만 변화 없이 문제만 선명해지는 상황은 척박한 현실과 불투명한 미래의 무게를 실감케 한다. 하지만 문제를 문제로 부르게 된 이상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다행히 운동은 불투명한 전망과 불화 속에서도 서로가 살아온 환경의 맨얼굴을 살피며 그것이 어째서 차별이었는지 확인하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이렇다 할 활로가 보이지 않을지라도 운동은 누락된 삶에 해상도를 높이며 무엇이 문제이고 바꿔야 하는지 알려왔다. 가난과 불건강의 배경이 무엇인지 살피면서 저마다 다른 삶이 같은 구조에 놓여 있음을 확인하며 함께 싸울 필요를 체득했다. 설령 차별금지법을 모르고 때론 반대할지라도, 우리는 당신이 겪는 소외와 배제까지도 문제 삼고 함께 바꿔나갈 것이다.

기나긴 체념과 절망으로부터 냉소와 회의의 유혹은 쉽다. 하지만 누군가는 현실의 구겨진 자리를 투명하게 응시하며 유머와 웃음을 틔운다. 설령 그것이 허탈함의 다른 표현일지라도, 어떤 답도 보이지 않을 때 기대조차 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필사적으로 싸움의 동력을 찾아야 했을 이들은 잔인한 현실을 직시하며 울고 웃는다. 그렇게 운동은 제 실존을 망가뜨리지 않으면서 고통을 대면하는 근력을 길러왔다. 이 글은 진심으로 함께 웃는 그 날을 만들기 위한 노력들의 헌정이자 결의의 일부다. 더 이상 체념이 성원들의 몫이 아니길. 너무도 당연한 사실이 오랫동안 나중으로 미뤄져 왔다. 이제는 국회가, 국가가 응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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