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꼬리가 몸통을 흔들게 둘 수 없다

2021.11.24 03:00
김경엽 | 전교조 직업교육위원장

지난 10월6일 발생한 여수 현장실습생의 비극적인 사고와 관련해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주장에 반론을 제기한다. 현장실습생의 노동자성을 보장하면 사고를 막을 수 있다거나 학생들이 졸업 전후 경험하는 노동환경은 동일하기에 현장실습을 폐지하면 안 된다는 주장은 일반화의 오류다. 이미 현장실습생을 노동자로 인정했지만 사고는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과거 정책을 살펴보자. 교육부가 2003년 발표한 ‘현장실습 운영 개선방안’은 사실 교육당국이 직업계고 문제에 처음 관심을 보인 정책이나 마찬가지였다. 교육계의 가장자리에 있던 직업계고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을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지금까지 엉켜 있는 직업계고 현장실습 실타래의 시작은 아니었을까.

김경엽 | 전교조 직업교육위원장

김경엽 | 전교조 직업교육위원장

교육부는 학교가 교육과 노동이라는 협곡을 아슬아슬 비행하도록 만들었다. 현장실습생의 인권문제가 개선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일자 교육부는 2006년 ‘실업계고교 현장실습 운영 정상화 방안’을 발표했다. 현장실습은 3학년 2학기 수업일수의 3분의 2 지점 이후 실시하도록 한 것이다. 학교는 혼란스러웠다. 2003년 현장실습 운영의 기본 골격은 같았지만, 기간 단축으로 학생들이 반발했다. 도입 2년차부터 학교 수업이 정상궤도에서 진행되면서 학교교육 정상화라는 목표는 달성되는 것 같아 보였다. 그러나 2008년 학교자율화 정책으로 이 방안을 폐기했다.

현장실습 업체 참여 조건 완화와 현장실습 기간 장기화는 또다시 현장실습생들의 사망사고로 이어졌다. 대책도 잇따랐다. 교육부는 2012년 ‘특성화고 현장실습제도 개선대책’에서 근로계약서 체결 지도 강화를 강조했다. 그간 권장하던 실습생 보호조치를 의무로 변경했다. 하지만 사고를 막지는 못했다. 2013년 ‘학생 안전과 학습 중심의 특성화고 현장실습 내실화 방안’은 ‘우수·강소 기업’ 중심의 현장실습을 장기화했다. 또다시 사망사건이 연달아 발생했다. 2016년 직업교육훈련촉진법을 개정해 현장실습의 안전을 강화하는 조치를 취했으나, 2017년 또다시 참혹한 사건들을 막지 못했다.

이후 학교 현장에 집행된 정책은 2018년 2월 나온 ‘학습 중심 현장실습의 안정적 정착방안’이었다. 교육당국이 인증한 ‘선도 기업’을 중심으로 장기간(3개월 학습현장실습 이후 3개월 조기 취업 현장실습) 진행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오래가지 못했다. 현장학습이 선도 기업을 중심으로 진행되다보니 현장실습 업체 수가 줄어 학생의 실습기회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2019년 1월, 어떤 규제도 없는 참여 기업에서도 현장실습을 할 수 있게 됐다. 심지어 2020년 5월에는 학습현장실습은 1~2주만 하고 장기간 조기 취업하는 ‘블렌디드 현장실습’이 도입됐다.

일각에서는 여수 현장실습생 사망사고 원인을 선도 기업 중심 현장실습에 교육당국 행정력이 집중됐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교육부가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게 가장 큰 원인이다. 교육부는 장기간 현장실습을 운영하며 수업과정을 제대로 이수하지 않은 학생들을 산업현장으로 내보냈다. 고 홍정운 학생의 경우 2학기 잠수 수업이 편성되었는데 이수하지 않은 채 불법노동을 지시받았다. 이들에게 놓인 노동환경과 안전망은 후진적이었으며, 산업현장은 선임 노동자가 기술을 전수할 시간과 공간이 마련돼 있지 않았다. 현재 현장실습제도가 학습으로서 기능하지 못하고 저숙련 일손이 필요한 기업에 값싼 인력을 제공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 근본적 이유이다. 지금처럼 고용을 확정하지 않는 상태에서 운영하는 직업계고 현장실습은 몇 개의 지침 개선만으로는 수십년간 반복된 엉킨 실타래를 풀지 못한다.

직업계고 3학년 중 약 30%의 학생은 취업을 희망한다. 정부는 이들을 위해 안정적 일자리 마련 정책을 펴야 한다. 11월 말까지 학생들이 학교교육을 마치고 정부가 제공하는 일자리를 대상으로 12월에 구직활동을 하는 것을 보장해준다. 그리고 최종 채용이 확정된 후, 노동자 직무능력 향상을 위한 교육을 기업에서 책임감 있게 진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노동자를 체계적으로 훈련시키는 것은 기업 생산성 증대의 중요한 바탕이다. 현장실습은 이러한 체계의 기초가 되기 때문에 안정적 일자리 정책은 학교교육 정상화 방안과 함께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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