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과 다음번

2022.02.24 03:00 입력 2022.02.24 03:04 수정

“지난번에 이렇게 하니까 안 됐어.” 블록을 가지고 놀던 아이가 말한다. 아이는 블록 쌓기에 여념이 없다. 무엇을 짓는 거냐고 물어도 수줍게 웃을 뿐 뾰족한 답변을 하지 않는다. “그냥 높이 쌓는 거야?” 물었더니 고개를 젓는다. 아이는 다시 쌓기에 집중한다. 지난번에 블록 쌓던 시간을 헤아리고 있는 것 같다. 그렇게 해서 안 됐던 경험을. 그냥 높이 쌓는 것이 아니다. 아이는 스스로 만들고 싶은 것이 있다. 머릿속으로 상상했던 것을 구현하려는 아이의 손놀림이 간절하다.

오은 시인

오은 시인

어른은 멀찌감치 서서 아이의 모습을 바라본다. 딱 저만했을 나이, 자신은 어떤 아이였을까. 유년기의 몇 장면이 떠오른다. 느닷없이 소환된 장면은 아니다. 그것은 마치 앨범에 담긴 사진처럼, 언제고 마음만 먹으면 꺼내서 볼 수 있다. 환히 웃고 있는 모습도 있지만, 슬프고 화나고 못마땅했던 순간이 더 많다. 그는 무엇 때문에 슬펐는가. 누구 때문에 화나고 누구에게 못마땅했는가. 어른이 될 때까지 그가 잊지 않는 장면에서 감정을 불러일으킨 자는 다름 아닌 그 자신이었다. 그는 순전히 스스로 때문에 슬프고 화나고 못마땅했다.

하루는 친구들과 함께 놀이터에서 모래성을 쌓고 있었다. 손으로 땅을 파고 모래를 쌓아 성을 만들었다. 튼튼하게 성곽을 다지고 성벽에 이쑤시개로 창문을 냈다. 각자의 자리에서 축조된 성이 모래밭 위를 수놓았다. 그는 친구들이 만든 모래성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어린 그가 보기에도 그것은 자신의 것보다 빼어났다. 성곽은 날렵했으며 성은 더 높았다. 성 위에 아슬아슬한 첨탑을 세운 아이도 있었다. 휘둥그레진 눈에서 눈물이 왈칵 솟구쳤다. 그는 손발을 휘저어 친구들의 성을 무너뜨렸다. 상실을 직면한 친구들도 울기 시작했다. 모래밭은 삽시간에 눈물바다가 되었다.

다음날, 엄마는 어린 그를 이끌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사과하게 했다. 어제 그렇게 울었는데도 눈물은 그치지 않았다. “다음번에는 절대 그러지 않겠습니다.” 엄마가 외우게 한 문장을 말할 때마다 목에 생선 가시가 걸린 것 같았다. ‘절대’ 때문이 아니었다. ‘다음번’이라는 말이 그에게 요원하게 느껴졌던 탓이다. ‘다음번이 있을까?’ 혹은 ‘다음번에도 아이들이 나와 놀아줄까?’ 같은 질문들로 머릿속이 우거졌을 것이다. 모래성의 두 번째 뜻인 “쉽게 허물어지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을 현장에서 익힌 셈이다. 그는 그 뒤로 놀이터에 나가지 않았다. 지난번의 잘못을 다음번에 만회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누구나 기억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에 읽은 김승섭의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난다, 2022)와 노동건강연대가 기획하고 이현이 정리한 <2146, 529>(온다프레스, 2022)는 기억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절히 깨닫게 해주었다. 김승섭은 천안함 생존 장병과 세월호 생존 학생의 이야기를 아프게 전한다. 이현은 2021년 한 해 동안 산업재해로 세상을 떠난 노동자의 죽음을 묵묵히 기록한다. 외면했거나 몰랐던 장면을 마주하면서, 내가 품었던 것은 비단 상실감만은 아니었다.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생각하게 했다. 기억은 언뜻 과거의 인상을 길어 올리는 일처럼 보이지만, 도로 생각해낸 것을 가지고 미래를 다짐하는 일로 확장될 수 있다. 비극에서 남은 자들을 살피며, 헤드라인에서 비껴난 어둡고 후미진 현장을 기록하며, 지난번은 다음번으로 연결된다.

기억하는 사람은 슬퍼하는 사람이다.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사람이다. 텅 빈 운동장을 보며 사람들로 북적이던 시간을 떠올리는 사람이다.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모래성을 무너뜨린 아이가 있었고, 스스로 허문 블록을 다시 쌓는 아이가 있다. 지난번을 기억하는 사람만이 다음번을 기약할 수 있을 것이다. 기억이 기약이 될 때, 미래는 비로소 구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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