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하기 싫어하는 아이

3월 초, 개학 주간이다. 주변의 학부모들은 겨울방학이 길었다고, 교사들은 그런 게 있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시간이란 저마다의 처지에서 지극히 상대적으로 흐르는 듯하다. 이제 2학년이 된 나의 아이도 자신의 초등학교로 간다. 그가 아침마다 가장 많이 했던 말은 “나, 학교 가기 싫어”였다. 개학 첫날에도 그는 적당히 우울한 표정을 하고는 등교했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아이의 엄마는 아무래도 전생에 우산장수와 짚신장수 형제의 어머니였던 게 분명하다. 날이 좋으면 우산 파는 첫째 걱정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비가 오면 짚신 파는 둘째를 걱정하는 것처럼 아이를 보며 늘 불안해한다. 아이가 왜 학교를 즐겁게 다니지 못하느냐고, 무슨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고 말한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어린 시절에 학교에 가고 싶었느냐고 물었다. 그가 그렇지 않다고 해서 자신도 그랬던 것을 왜 아이는 다르길 바라느냐고 되물었다. 나도 아이만큼 어렸던 시절 학교에 가고 싶지 않았다. 5분 거리의 그 등굣길도 싫어서 일부러 벽에 붙어 땅만 보면서 걸었고 교실에서도 멍하니 앉아 있다가 돌아왔다. 왜 그랬느냐면, 재미가 없었다. 나에 비하면 아이는 몹시 즐겁게 학교에 가는 편이다. 나는 학교에 가지 않고 싶은 그 마음을 이해하고프다.

아이는 학교뿐 아니라 공부도 재미가 없다고 했다. 나는 그런 그에게 아빠도 공부가 재미없었다고, 그건 당연한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공부가 재미있어서 열심히 하는 친구가 오히려 이상하다고, 하기 싫은 걸 열심히 하면 큰일 나니까 적당히만 하라고. 나는 문학 공부가 재미있어서 대학원 박사과정까지 갔지만 학자가 되기를 자처하는 사람이 많을 리가 없다. 이제 막 10의 자리 덧셈을 배우기 시작한 아이는 안심이라는 표정으로 그럼 열심히 공부하지 않아도 되느냐고 나에게 물었다. “응, 그럼, 대신 열심히는 안 해도 적당히는 해야 해.” 하기 싫지만 해야 하니까 모두가 참고 하는 것이 공부인 것이다. 나는 공부가 재미없는 그 마음을 이해하고프다.

아이는 오늘도 유튜브 영상을 보고 휴대폰 게임을 한다. 엄마의 통제로 하루 한두 시간 정도 하는 게 전부지만 그래도 공부보다는 더 열심히 하는 듯하다. “너는 왜 그렇게 영상하고 게임을 좋아하니. 적당히 좀 하라”는 짜증 섞인 말이 매일 들려온다. 그러나 그건 역시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나도 어린 시절 아침에 일어나면 디즈니 만화동산으로 하루를 시작했고 점심에 하는 특선만화를 야무지게 챙겨보고 동네 오락실에 가서 시간을 보냈다. 나는 거기에서 말을 배우고 서사를 배우고 맥락을 배웠다. 그것이 하나의 온전한 세계가 되어 다가오는 것도 그 시절뿐이다. 과하게 거기에 빠지는 것은 막아야겠지만 그들에게 그보다 재미있는 게 어디 있을까. 나는 영상과 게임이라는 세계에서 살고픈 그 마음을 이해하고프다.

아이는 함께 솔밭 같은 데 가면 적당한 막대기를 찾아 손에 든다. 이 나이의 남자아이들은 늘 땅에 떨어진, 잡기 좋은 막대기를 찾는다. 이건 어쩌면 그들의 몸에 새겨진 본성인 듯하다. 사실 나도 막대기를 볼 때마다 저것을 주워야 한다고 뇌가 신호를 보낸다. 어른이라는 이성이 그것을 곧 쳐낼 뿐이다. 나는 막대기를 손에 쥐는 그 마음을 이해하고프다.

아이는 오늘도 적당한 표정을 하고는 학교에 갔다. 당연히 공부하고 싶지 않고, 영상을 보고 싶고, 게임을 하고 싶고, 가는 길에 적당한 나무 막대기를 하나 찾아 손에 쥐고 싶을 것이다. 타인을 보살피는 일은 어쩌면 그런 마음을 이해하는 데서부터 시작하지 않을까. 나의 아홉 살 그 시절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게임을 하고픈 것만큼이나 그 마음을 이해해주기를 바랐던 건 아닌가. 아홉 살 그의 처지와 입장이 되어 그를 이해하고 나면 그를 걱정해야 할 일도 많이 줄어든다. 나는 그보다 더하면 더했으나 지금 적당히 잘 살아가고 있다. 부모와 아이뿐 아니라 사람의 모든 관계가 그러하다. 그의 처지가 되어 사유하고 나면 대화가 시작되고 그를 이해하는 가운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비가 오든 날이 맑든 그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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