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롱맨 시대의 통일국민협약

2022.03.22 03:00 입력 2022.03.22 03:02 수정

문재인 정부의 철학 중 하나가 다양한 사회협약을 만들어가는 것이었다. 복지국가모델을 좌표로 삼고 등장한 정권이니만큼 사회협약 모델에 관심이 가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돌이켜보면 신자유주의 효율성을 극도로 강조한 이명박 정부 시대를 넘어서는 과정에 한국사회에서 그 같은 사회협약 모델은 언감생심 재론하기조차 어려웠다. 당시는 공리주의를 비판한 마이크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정도가 진보 서적으로 간주될 만큼 신자유주의 메커니즘이 한국사회에 지배적이었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분위기가 바뀌긴 했지만 이명박 정부 기간 내내 착근된 공리주의 사고의 뿌리는 깊고 넓었다.

이정철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이정철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탄핵과 촛불로 들어선 문재인 정부가 민주적 가치나 사회적 대화를 절대적으로 강조하는 건 불가피했다. 이런 조건하에서 시작된 것이 공론화 모델이었다. 소위 사회협약을 만들어가는 방법론이기도 했지만 숙의민주주의와 공론화 자체가 하나의 실험적 가치를 지닌 대상으로 간주되었다. 2017년 이 같은 시도로 우리를 가장 놀라게 한 것은 신고리 원자력 발전 중단 여부를 둘러싼 공론화위원회의 활동이었을 것이다. 적절한 시민참여단을 선발해 정해진 매뉴얼에 따라 의사결정을 완결짓는 모델은 생경했지만 숙의민주주의 옹호론자들에게는 매우 흥분스러운 경험이었다. 그러나 원전 문제는 문재인 정부 내내 정당한 합의점 없이 표류한 의사 결정의 하나라는 수식어가 뒤따라 다녔다. 소수 선발 대중의 의사결정이 대표성과 정당성을 갖고 있는가라는 질문 즉 사회적 대표성과 인구통계적 대표성 사이의 어용 논란이나 정보의 비대칭성 등에 대해 성숙한 해법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숙의를 거치면 하나의 공중이 만들어지고 의사결정의 합의가 이루어진다는 낙관론이 넘어야 할 기술정치적 한계는 생각보다 높았다.

한편 이를 남북관계에 적용하고자 한 시도도 있었다. 정부가 국정과제로 제시한 통일국민협약이 그것이었다. 통일국민협약에 대해서는 두 가지 쟁점이 있었다.

하나는 남북관계라는 특성을 감안할 때 북한과의 협의 없는 통일정책 합의라는 것이 유의미한가라는 다소 근본주의적 질문이 그것이다. 사실 북한의 행동에 대한 불확실성을 전제한 한국사회만의 숙의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는 의문부호는 통일정책의 정당성과 관련된 근본 전제였다. 북한이 비핵화 합의를 이행한다는 것을 전제로 대북정책 합의안을 만든들 북한이 어느 날 갑자기 비핵화 합의가 무효라고 선언해 버린다면, 애써 만든 합의안이 무용지물이 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합의 당사자들 사이에 책임 공방이 덧대어진 더 큰 갈등이 시작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일정책이란 한국사회 내부의 문제이기도 했기 때문에 북한의 반응과 무관한 우리의 대북정책 혹은 통일정책 안은 필요하다. 이 점에서 통일국민협약은 북한이라는 불확실성을 그대로 둔 채 한국사회의 합의안을 만드는 국정과제로 채택되었던 것이다. 문재인 정부 5년 안에 합의안 초안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고 실제 그 주체였던 ‘평화·통일비전 사회적 대화 전국시민회의’는 어려운 조건에서 이를 완수하였다.

통일국민협약 수행 과정에서 제기된 또 다른 문제는 정당정치와의 관계였다. 통일국민협약을 정당정치를 대체하려는 시도로 간주한 일부 야당 정치 세력이 사실상의 보이콧으로 대응했고 그 결과 통일국민협약은 국회에서 반쪽짜리 과제로 치부되기 일쑤였다. 때로는 의도적인 무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남남갈등 해소라는 대의를 부정할 수는 없지만 시민사회가 주도하는 사회협약식 방식에 대해서 동의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통일국민협약안은 당선인의 ‘북한 주적론’ 한 방에 무너져 버렸다.

새 당선인이 어떤 의사결정 방식을 이어갈지는 모를 일이다. 그러나 언뜻 보기에 협약식 의사결정에 그리 무게감을 실을 것 같지는 않다. 강골 검사와 숙의민주주의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 브랜드 조합이고, 여당이 된 국민의힘은 사회적 대화에 소극적이다. 국민통합의 방식도 대통령이 직접 나서는 대국민 설득 즉 톱다운식 직접 정치가 주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스트롱맨들이 선호하는 이 같은 수직적 설득의 정치가 나름대로의 장점 즉 효율성을 지니고 있음은 사실이다. 하지만 협약식 민주주의나 광장정치의 수평적 제도화론자들이 좋아하는 토론하는 즐거움 그리고 소확행하는 연대의 정치라는 재미가 설 자리는 없을 듯하다. 용산 시대를 열어가는 방식을 보니 협약 만드는 재미는 사치재요, 효율성과 직접 정치가 다시 호명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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