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가 없어질 자리

2022.03.24 03:00 입력 2022.03.24 03:03 수정

안철수 인수위원장과 이명박 정권(MB 정권)에서 교육부 장관을 지낸 이주호 교수 등이 교육개혁의 방안으로 교육부 해체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의 통합방안을 제기했다. 이는 지금 대통령 당선인 측이 벌이는 다른 일들처럼 충분한 검토와 공론화 없이 진행된다면 또 다른 재앙이 될 것이다. 교육부 해체는 약간의 긍정적 가능성과 함께 엄청난 현실적 위험을 내포한 일로 보인다.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숭배 애도 적대> 저자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숭배 애도 적대> 저자

한국 대학의 병통은 세 기득권 카르텔에서 비롯된다. 제일 큰 첫 번째 암종은 부패하고 무능한 일부 사학재단, 둘째는 교육부와 그 주변 관료집단, 세 번째는 일부 정규직 교수들이다. 이들은 대학이 차별과 불평등을 생산하는 기지가 되게 했고, 또 대학을 그 자체로 한국에서 가장 비민주적이고 불평등한 공간으로 만들었다. ‘무위의 제왕’ 문재인 정권은 이에 대해 어떤 일도 안 했고, 못했다. 이제 너무 심각해져서 어떤 치료도 수술도 어려워보이는 대학 문제를 방치했다.

교육부 해체가 그래도 긍정적 가능성이 있다면, 단 한 번도 개혁된 적 없는 저 삼각의 매듭 중 하나가 약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MB 정권 이래 틀 지워진 채 변하지 않았던 정책의 무사안일과 보신주의가 흔들릴 수 있다. 막강한 행정 중심으로서의 교육부가 없어지면 ‘늘공’과 ‘교피아’들도 관료주의를 업데이트하고 기존 이권의 네트워크를 새로 짜야 하는 수고를 할 것이다. 예산과 지원을 미끼로 대학에 ‘갑질’하던 방식의 대학평가와 대학위기에 대한 정책기조도 일단 정지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가능성을 빼면 교육부 해체는 더 큰 대가를 각오해야 한다. 만약 윤석열 정권에서 교육부가 해체되면 누구에게 가장 큰 이득이 될까? 많은 사학재단과 교주들은 권력은 무한정 누리면서 사회적 책무는 방기해왔다. 그들에 대한 견제와 규제가 교육부 해체 방안에 들어 있나? 당장 폐교 위기를 맞은 일부 사학과 교주들도 자기 재산만 지켜진다면 교육부의 간섭이나 규제가 없어지는 게 좋을 것이다. 벌써 대학 현장에서는 정권교체의 복음에 들뜬 사학재단과 총장들이 눈치보기를 그만두고 노골적인 전횡을 재개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비정년·비정규직 교수, 작은 대학의 교직원들에게 이는 당장 절박한 위협이자 재앙이다. 이런 대학 내부 약자들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는 개혁은 의미가 없다.

일부 정규직 교수들도 교육부의 감독이 없어지는 게 좋을 것이다. 예컨대 법인카드로 유흥주점에서 술을 사먹거나, 학위 수여를 위시한 각종 연구부정에 연루된 교수들과 이를 방치하는 ‘주요’ 대학을 어떻게 감시 감독할 것인지. 해체론은 ‘대학자율성’을 주요 명분으로 삼는다. 그러나 인구절벽 때문에 상당수의 대학이 위기에 처한 지금 이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허구다. 또는 돈 걱정 없는 몇몇 ‘명문’ 대학에만 적용 가능한 ‘돈의 논리’에 불과하다. 교육 분야에서도 신자유주의자들은 정부의 개입과 규제 자체를 악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개입과 규제의 구체적 방향과 정책이 문제이지, 시장전제주의 사회에서 규제 자체가 결코 나쁜 것일 수 없다. 약자를 보호하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제도적 규제로 가진 자와 권력의 횡포는 반드시 제어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명박근혜’ 시대에 대학들이 자율을 누린 것처럼 말하는 것은 거짓이다. 더 나쁜 방식의 간섭과 규제가 횡행했으며 그에 입각한 정책 중에는 참담하게 실패한 경우도 많다. 예컨대 MB 정권에서 교육부는, 세계 수준의 연구중심대학(WCU)을 육성한다며 5년간 근 1조원을 풀어, 외국의 노벨상 수상자 등에게 돈을 줘서 데려오라는 기묘한 사업을 벌였다. 대실패였다. 그 시절의 ‘수월성’과 ‘자율’의 이데올로기는 대학 사이의 위계와 대학 내부의 불평등을 더욱 심하게 만들었다. MB맨들은 이런 문제를 진정으로 반성했을까?

한국의 사립대학은 ‘사립’이라는 말이 우습게 엄청난 세금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런데 사학재단들은 교육과 연구에 전입금을 제대로 내지 않는다. 또 폐교 위기에 처한 모 사립대처럼 이사장이나 대학 권력자들이 돈을 엉뚱한 데 써왔다. 대학의 인문사회과학과 기초과학도 이제 국민의 세금으로 겨우 유지된다.

요컨대 대학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거버넌스의 개혁은 꼭 필요하다. 기존의 교육부로는 안 된다. 하지만 그 관점은 교육의 공공성을 지키는 것이다. 그 가장 쉬운 길은 기득권의 타파와 대학의 약자의 관점에 서는 것이다. 주로 공학·의학 교수들과 대교협 출신 관료들이 인수위에 임명되었다. 그들이 대학 전체를 대변할 수 없다. 인수위 구성부터 고통받는 대학 현장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도록 재수정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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