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청문회, 20여년 절망의 악순환

2022.04.28 03:00 입력 2022.04.28 03:03 수정

인사청문회를 할 때마다 절망한다. 대한민국의 고위공직자, 소위 사회지도층이라 하는 이들이 사는 법이 얼마나 일반 대중과 다른지를 매번 확인하게 되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 초대 내각 청문회는 특히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부터 파행이다. 국무위원 청문회는 시작도 안 했는데, 제기된 산더미 의혹들로 이미 지칠 지경이다.

송현숙 후마니타스연구소장·논설위원

송현숙 후마니타스연구소장·논설위원

일단 후보자들의 재산 규모가 서민들로선 근접하기도 어렵다. 새 정부 초대 장관 후보자 18명의 청문요청안에 따르면 이들의 재산 평균은 약 38억8000만원이다. 지난해 가구당 평균자산은 5억253만원(2021년 가계금융복지조사)이었다. 문재인 정부 1기 내각보다 15억원가량 늘었고, 9년 전 박근혜 정부 1기 내각의 2배도 넘는다. 절반이 넘는 10명은 본인 또는 가족 명의로 이른바 ‘강남 3구(서초·강남·송파)’에 집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전국 인구의 3% 남짓이 살고 있는 이곳에 국무위원 후보자 55.6%가 집을 소유하고 있다. 이들이 어딜 바라보며 어떤 정책을 펼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살아온 방식 또한 일반 국민들은 생각도 못할 방법들이다. 세금탈루,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 각종 부모 찬스 등의 비리 의혹은 아예 국무위원들의 필수 자질로 쳐야 할 정도다. 과감하고 고도화된 신종 수법들도 계속 추가되고 있다. 이번 내각은 대형로펌·사외이사 회전문 내각으로도 불린다. 사생활 침해 등 이유로 후보자들이 상당수 자료 제출을 거부했지만, 드러난 일단만으로도 각종 특혜 속 ‘그들만의 사는 법’이 어느 정도 그려진다. 10년째 호텔 피트니스 혜택을 공짜로 누리고, 5년간 원천징수영수증 소득공제 항목에 신용카드·현금영수증·의료비 등의 사용액을 0원으로 기재하고, 배우자는 재벌가에 그림을 고가로 판매하고(한덕수 총리 후보자), 관사에 살며 아파트 두 채를 임대해 ‘관사 테크’이익도 챙겼다(이종섭 국방부 장관 후보자). 도지사 시절 모친 소유의 땅이 지역의 유명 호텔에 뭉텅이로 고가에 매각되는가 하면(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 하필 아빠가 병원장·진료처장을 하던 그때 남매가 바로 그 의대에 편입하고(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한국풀브라이트 동문회장을 맡았던 후보자 가족 4명 모두가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는(김인철 교육부 장관 후보자), ‘기막힌 행운’이 반복적으로 일어난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측은 내각 인선과 관련, “도덕성을 겸비하면서 실력과 능력으로 국민의 통합을 이끌어낼 수 있는 신뢰감 구축이 제1, 제2의 요건”이라 밝힌 바 있다. 그래놓고, 해당 부처 업무와 충돌하는 의혹들까지 적지 않은 이런 사람들을 후보로 내세웠다. 능력은 차치하고 스스로 내세운 도덕성·국민통합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인사다.

현재의 진창보다 더욱 무서운 건 2000년 인사청문회가 도입된 뒤 20여년간 우리 사회가 절망에 익숙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공직 후보자들에 대한 윤리기준을 제시하고, 이들의 능력과 도덕성 등을 검증하며 대통령의 자의적 인사권 행사를 견제하자는 인사청문회의 취지는 유명무실해졌다. 도덕성 기준은 확연히 후퇴했다. 김대중 정부의 장상, 장대환 국무총리 후보자가 연이어 낙마한 결정적인 이유는 위장전입이었다. 노무현 정부 김병준 총리 후보자는 논문 중복 제출이 적발돼 낙마했다. 그러나 이후 훨씬 정도가 심한 위장전입이나 논문표절은 물론, 파렴치한 사유가 밝혀져도 버티기 끝에 입각한 경우가 많았다. 국무위원은 아니지만 윤성식 감사원장,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는 노무현 대선 캠프 참여, 대통령과 사시 동기라는 코드 인사 논란 속 물러났다. 지금으로선 믿기지 않는 이유다. 그때그때 고무줄 기준에, 후보자들은 소나기만 피하자는 식으로 잠깐 고개를 숙일 뿐이다. 20년간 맷집만, 뻔뻔함만 키웠다. 사회지도층의 삶은 주요 시그널이 된다는 점에서 청문회가 공동체에 끼치는 해악은 심각하다. 부적격자의 잘못이 지탄받긴커녕 승승장구하도록 둬선 안 되는 이유다.

인물이 없는 게 아니라 잘못된 관행을 용인한 게 문제다. 네 편이라 안 되고 우리 편이면 무조건 봐주는 대신, 안 되는 건 안 된다는 원칙을 확고히 세워야 한다. 지금 절실한 것은 신뢰감으로 사회통합에 도움이 될 공직자다. 여야 공수만 바뀌었을 뿐 별반 다를 것도 없는 이들이 서로를 향해 삿대질하는 광경은 지긋지긋하다. 먼저 변하는 쪽이 승자다. 도덕성의 기준을 높이고 겸허히 달라지는 모습을 보일 때 국민들도 새롭게 평가할 것이다. 이것이 지극히 상식적인 ‘국민 눈높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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