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포칼립스의 인류학

2022.08.30 03:00 입력 2022.08.30 03:03 수정

“하루 품삯으로 고작 밀 한 되, 아니면 보리 석 되를 살 뿐이다. 올리브기름이나 포도주는 아예 생각하지도 마라.”

요한계시록의 한 구절이다. 일곱 봉인이 해제되면서 일곱 재앙이 나타나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물가 폭등이다. 미국 소비자물가지수는 약 4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국제 밀 가격은 약 50% 상승하여 1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거의 매달 금리를 큰 폭으로 올리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통화량 증가와 공급망 충격이 주원인이다. 여기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기후 위기로 인한 흉작, 유가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 상승 그리고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한 수출 규제 등이 어지럽게 얽히고 있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위기 상황이다.

박한선 인류학자

박한선 인류학자

우리는 종말론을 좋아한다. 아직 인류가 종말한 적은 없었지만, 종말에 관한 두려움은 인류사 내내 지속했다. 수많은 문화권에서 아포칼립스적 신화가 전해진다. 기독교뿐 아니라 불교나 이슬람에도 있다. 북유럽 신화 라그나로크나 인도 신화 칼리 유가도 마찬가지다. 종말을 알리는 징후는 다양하다. 지진과 홍수 등 기후 변화가 단골 징후다. 유성우나 일식처럼 천문의 변화도 불길하게 여겨진다. 흉년이나 기아 등 경제적 어려움도 있다. 심지어 서기 999년이나 1999년처럼 꺾어지는 해도 불안을 자극한다. 사실 예수는 기원전 4년에 태어났는데도 말이다. 이런 여러 징후 중 가장 강력한 것이 바로 전염병이다.

그런데 감염병 유행은 인간의 심리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사람들이 비관에 빠지면 점점 유행이 수그러든다. 불안과 공포 속에 뿔뿔이 흩어지기 때문이다. 반대로 희망을 가지기 시작하면 다시 유행이 시작된다. 유행은 저잣거리에서 일어나는 법이다. 이러한 반응은 어느 정도 순기능적이다.

경제는 반대다. 낙관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호황을 보인다. 반대로 비관에 빠지면 경기가 침체한다. 현대 사회의 경제시스템하에서는 이런 경향이 두드러진다. 즉 경제도 심리, 방역도 심리인데, 그 방향이 정반대다. 코로나19에 의한 경제 위기를 해결하기 어려운 이유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국이다.

원래 아포칼립스의 뜻은 종말이 아니다. 흔히 기근이나 전염병, 전쟁 등 대재앙을 의미하는 말로 쓰이지만, 원래는 덮개를 걷어 미래의 비밀을 보여준다는 뜻이다. 요한계시록을 영어로 아포칼립스라고 하는데, 말 그대로 ‘계시’록이지 ‘종말’록이 아니다. 물론 주로 재앙이 계시되긴 하지만.

앞서 말한 대로 인류의 마음에는 종말에 관한 강박이 가득하다. 인류사는 늘 재난의 연속이었으니 이를 대비하는 심적 표상도 진화했을지 모른다. 조현병 환자의 절반 정도가 아포칼립스적 망상을 보이는데, 사실 정신병적 망상과 일상적 상상 간의 질적 차이는 없다. 우리는 모두 종말을 두려워하고, 동시에 종말을 대비한다. 인류학자 마리 피에르 르노는 종말론적 시나리오가 운명적 무력감을 유발하지만, 동시에 생존을 위한 잠재력과 용기, 인내를 촉발하는 힘이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현대 사회의 아포칼립스, 즉 재난 영화가 그렇게 재미있는지도 모른다.

할리우드 재난 영화를 포함해서 아포칼립스 신화의 구조는 비슷하다. 거대한 재앙의 징조, 소수의 예언자, 다수의 무관심과 외면, 기존 질서의 근본적 와해, 과거에 대한 반성, 그리고 살아남은 소수가 만드는 새로운 질서다. 인류사 내내 무수히 반복된 신화적 역사다.

2022년은 재난 영화의 어느 장면일까? 2년 반의 러닝 타임이 끝나고 영화를 마무리하는 중일까? 그건 아닌 것 같다. 모르긴 몰라도 재난 영화의 초입부, 모두가 위험 신호를 무시하는 장면이 먼저 떠오른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질병관리청의 브리핑도, 한국은행의 경고도 점점 시시하게 들린다. 이러다가 일곱 봉인이 모두 풀리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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