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진화인류학

2022.08.02 03:00

2014년 애슬레틱스와 레드삭스의 경기. 2점 차로 뒤지던 7회 말, 애슬레틱스의 투수 팻 벤디티가 마운드에 올랐다. 강력한 왼손 투구로 타자를 1루수 땅볼로 잡아냈다. 첫 번째 타자는 왼손잡이였다. 그런데 다음 타석에 들어선 선수는 우타자였다. 벤디티는 글러브를 바꿔 끼웠다. 이번엔 오른손 투구였다.

박한선 인류학자

박한선 인류학자

보통 좌투수는 좌타자에게, 우투수는 우타자에게 강하다. 벤디티는 타자에 따라 공 던지는 손을 바꿀 수 있는 양손 투수였다. 재미있게도 레드삭스의 그다음 타자는 블레이크 스와이하트. 그도 역시 좌타석과 우타석에 모두 설 수 있는 양손 타자였다. 하마터면 투수의 글러브 위치에 따라 타자도 좌우로 계속 왔다 갔다 하는 눈치게임이 벌어질 뻔했다.

좁은 식당에서 왼쪽 사람과 연신 팔꿈치가 부딪친다. 나란히 앉아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가위도 반대로 잡고, 병뚜껑도 반대로 돌려 따야 한다. 키보드도, 마우스도 영 불편하다. 사실 이 정도는 약과다. 종종 왼손잡이는 생존과 번식에 직접적 손해를 본다. 우울증이 흔하고, 유방암도 많이 걸린다. 성적도 낮고, 연봉도 낮다. 가정 불화도 심하다. 군대에서 왼손잡이용 소총을 본 적 있는가? 왼손잡이 남성은 전투 사망률이 무려 두 배에 달한다.

사실 나는 오른손잡이라서 그 고통을 충분히 이해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불편하면 오른손을 쓰라!’고 할 정도로 무심하진 않다. 손잡이 방향은 상당한 수준으로 타고 나는 형질이다. 그래서 대개 왼손잡이로 평생 살아간다. 고집이 세서 그런 것이 아니다. 자랑스러워서도 아니다. 타고난 본성이 어디 그렇게 쉽게 바뀌던가?

그런데 이상하다. 그렇게 큰 손해를 본다면, 왜 사라지지 않았을까? 왼손잡이는 유전성이 제법 높은 형질이고, 진화적 적합도도 낮다. 따라서 자연선택에 의해 진작에 제거되었어야 한다. 하지만 세상에는 여전히 10%의 왼손잡이가 살아간다. 진화적 역설이다.

여기서 자폐인 이야기를 해보자. 왼손잡이보다는 훨씬 적지만, 여전히 1%의 자폐인이 살아간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부르는, 삶의 엄청난 어려움을 생각하면 참 이상하다. 자폐인은 일반인보다 수명이 약 12년 짧은데, 학습 장애를 동반한 경우에는 무려 30년 이상 짧다. 학업과 직장은 고사하고, 대개 일상생활도 어렵다. 결혼하여 자식을 얻는 자폐인은 정말 극소수다. 그런데도 세상에는 여전히 적지 않은 자폐인이 있다. 어찌된 일일까?

왼손잡이의 진화적 역설은 빈도의존적 선택으로 설명할 수 있다. 오른손잡이가 많아질수록 왼손잡이의 이득이 점점 커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오른손잡이는 왼손잡이와 싸울 때 불리하다. 그래서 운동 선수는 왼손잡이가 많다. 양손 투수와 양손 타자의 눈치게임이 벌어지는 이유다. 신체적 유리함에 그치지 않는다. 손잡이 경향은 다양한 정신적 기능과 관련이 깊다. 남다른 인지 경향은 종종 큰 상대적 이득을 준다. 단, 이러한 이득은 소수자일 때만 일어난다. 왼손잡이 비율이 높아지면 이득은 급속도로 감소한다. 절반의 인구가 왼손잡이라면, 신인 드래프트에 나선 왼손잡이 선수가 그리 돋보이지는 않을 테다. 왼손잡이는 영원하겠지만, 영원히 소수일 것이다.

아마 자폐 스펙트럼 장애도 그럴지 모른다. 손해가 막심하지만, 분명 어떤 이득이 있는 것 같다. 아직은 연구가 더 필요하지만 말이다. 흥미롭게도 자폐인의 약 40%만이 오른손잡이다. 아무튼 그들은 영원히 소수자일 것이다. 그러나 분명 일탈자는 아니다. 진화적 필연성을 가진 신경다양성이다. 마치 하나가 되려는 듯 촘촘하게 연결되는 현대 사회에서 소수자 전략의 이득은 전보다 박하다. 사회적 공감이 중요한 요즘 세상이다. 자폐인의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하지만 미래는 모르는 일이다. 자폐인의 남다른 모습도 역시 위대한 인간성의 한 측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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