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성비로 따질 수 없는 것들

2022.11.17 03:00 입력 2022.11.17 03:05 수정

책을 읽자는 얘기는 이제 하기가 싫다. 출판사를 운영하고 책을 팔아서 먹고사는 입장이지만, 듣기 좋은 이야기도 한두 번이지 계몽적인 어조로 책 읽기의 미덕을 자꾸 설파해봐야 꼰대의 잔소리로 들릴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요는, 책 안 읽는 시민에게 문제가 있다기보다 책 읽기 어려운 환경, 책을 읽지 않아도 되는 사회적 기풍이 더 문제라는 이야기다.

안희곤 사월의책 대표

안희곤 사월의책 대표

그러나 초점을 시민 아닌 당국과 공공기관에 맞추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시민이 책을 읽든 안 읽든, 책 읽을 환경을 조성하고 시민 스스로 성장케 할 책무는 정부에 있다. 헌법 제14조에서 22조는 이 정부가 그토록 좋아하는 국민의 ‘자유’를 촘촘히 명시하고 있거니와, 특히 22조는 “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자유가 국민의 행복권과 마찬가지로 ‘ ~로부터의 자유’라는 소극적 의미가 아니라 적극적 향유로 해석되어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최근 서울 마포구는 박강수 구청장의 작은도서관 폐쇄 방침으로 호된 홍역을 치렀다. “혈세 낭비”를 운운하며 작은도서관의 효용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예산을 삭감하고 독서실로 전용하겠다고 하여 주민과 독서문화계의 큰 반발을 부른 것이다. 작은도서관은 독서뿐 아니라 큰 도서관이 할 수 없는 돌봄과 쉼터의 기능까지 맡아 지역에 밀착된 생활문화 공간으로 호응을 얻었고, 전국 7000곳에 이를 만큼 확산된 모범적 정책이다. 방침을 철회한 마포구는 이 일로 나름 공로를 세웠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기호 소장의 표현대로 “박강수 마포구청장은 공이 없지 않다, 그는 독서문화계를 한순간에 뭉치게” 했다.

고양시는 “친구야! 책방 가자”라는 캐치프레이즈로 관내 중·고생 5만명에게 1만5000원의 ‘북페이’를 지급해 직접 책을 사고 읽게 하는 사업을 성공리에 진행한 바 있다. 2년째 실시한 이 프로그램은 만족도가 90%에 이를 만큼 큰 지지를 얻었고, 시는 대상을 초등 5, 6학년까지 확대할 예정이었다. 수치는 둘째치고 동네서점에 아이들이 몰려와 책을 고르고 사는 모습은 그 자체로 감동이었다. 이 아이들 모두가 6년 동안 적어도 일년에 한 번 책을 고르고 읽을 터이니 8억원 예산의 몇 배로도 거둘 수 없는 평생의 경험을 주는 셈이었다. 그러나 올해 새로 당선된 이동환 고양시장은 이 프로그램의 폐지를 만지작거리고 있다는 전언이다. 독서, 강연, 공연 등 각종 문화행사에 대한 시의 지원을 ‘퍼주기’로 규정하고, 원하는 사람이 돈을 내는 게 마땅하지 않으냐는 유료화 방침이 시장 입에서 나왔다고 하니 더욱 불길하다.

마포구청장과 고양시장 모두 여당 소속이라는 게 공교롭다. 전임 더불어민주당 정부가 독서와 문화 발전에 별반 기여한 것도 없지만, 있는 것조차 되돌리려는 움직임을 보면 전임자들의 정책은 무조건 삭제하려는 심사들인 것 같아 안쓰럽다. 그보다 더 의심이 가는 것은 정부와 지자체들의 사고방식이다. 정부는 시장의 주체가 아니다. ‘가성비’를 내세워 투자대비수익을 따지는 소비자나 기업이 아니라는 얘기다. 시민의 교양과 문화 함양은 시장에 맡길 수 없는 과제이고, 이런 돈 안 되는 일들을 하라고 정부가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혈세’를 운운하며 굳이 가성비를 따지겠다면, 공공도서관의 투자대비수익이 3.66배라는 수치를 보여주고 싶다.

경제학에는 ‘외부경제’ 또는 ‘외부불경제’라는 개념이 있다. 시장 거래와는 무관하게 이뤄지는 경제주체의 행위가 제삼자에게 미치는 효과를 이르는 말이다. 예컨대 3조원이 넘는 고양시의 예산 중 겨우 8억원으로 수만명 청소년의 미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그 청소년들의 경험 속에는 우리 모두의 삶을 진일보시킬 씨앗이 자라고 있을 것이다. 이런 교양적 민주 시민의 탄생을 가성비로 따지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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