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프레퍼는 가능한가

2023.02.10 03:00 입력 2023.02.14 10:15 수정

‘프레퍼(prepper)’는 돌발적인 사고나 재난에 대비하는 ‘준비’를 일상적으로 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정부가 제 기능을 하고 구호 요원이 달려올 골든타임인 72시간 또는 몇 달을 버틸 수 있는 물품을 빼곡하게 넣은 생존배낭을 꾸려서 현관이나 사무실 책상 아래에 두는 이들이다. 또는 집 아래에 땅굴을 파서 비상식량과 연료를 비축하고 자가 제조 호신용 무기와 통신 장치 작동을 연습하는 이미지를 떠올릴 수도 있다.

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

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

땅이 넓고 허리케인과 토네이도 같은 자연재해가 많은 미국이나 지진과 화산활동이 잦은 일본에서는 낯설지 않은 풍경이지만, 한국에서 그런 프레핑을 한다고 하면 이상하거나 유별난 사람 취급받기 쉬울 것이다.

그러나 포항과 경주 지진, 역대급 홍수, 세월호 참사와 최근의 인재들을 겪으면서 한국의 우리도 재난이 먼 곳에 있지 않음을 느끼고 있고, 낮은 수준으로라도 자발적 프레퍼가 되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튀르키예의 큰 비극을 목도하면서 가볍게 꺼낼 이야기는 아니지만, 기후위기에 대해서라면 프레퍼가 가능할까라는 질문을 해본다. 사실 지진은 시점과 강도를 예상하기 매우 어려운 반면, 여진이 지나고 나면 어느 정도 안정되고 복구가 시작된다. 그러나 기후변화는 원인도 과학적으로 증명되어 있고 기온 상승뿐 아니라 생물종과 경제에 미치는 영향까지 구체적으로 전망되고 있지만 문제는 그 양상의 불확실성과 변덕스러움이다. 평균 기온이 오르는 가운데 이번 겨울처럼 단기간에 혹독한 추위가 오기도 하고 어떤 계절과 지역에는 폭우와 가뭄이 번갈아 몰아닥치기도 한다. 티핑 포인트를 넘어선 기후위기는 상당 기간 되돌리기도 어렵다. 그리고 자연재해와 인간이 초래한 기후위기는 거의 구별이 어려워진다.

데이비드 월러스 웰스가 <2050 거주불능 지구>에서 다양하게 제시한 21세기 기후재난 시나리오가 바로 이런 장면들을 담고 있다. 이대로 가면 금세기 중반쯤 우리는 단 한 번의 멸종이 아니라 이렇게 가늠하기 어려운 재난의 일상을 겪게 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다. 이런 상황을 개인의 프레핑으로 이겨낼 수 있을까? 국가와 공동체 수준의 기후 프레핑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그러나 우리 정부와 주류 조직들의 대응은 여전히 정상성의 지속을 가정하면서 기후변화의 원인을 방치한 채 발생하는 피해를 줄이고 복구하는 데에 머물러 있다. 서울의 홍수에 강남역 빗물 저장 터널을 제안하고 침수에 대비해 거대한 방벽을 두른 신공항을 구상하는 것은 프레퍼의 생존배낭만큼도 도움이 안 되는 일이다. 모두에게 그러나 가장 취약한 이들에게 더욱 가혹하게 다가오는 기후위기에 대한 유효한 프레핑은 사실 가능하지 않다. 그럼에도, 직접 식량과 에너지를 만들어 쓸 수 있는 텃밭과 태양광 패널, 그리고 유사시에 서로 도울 수 있는 이웃이 있다면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는 정부가 도움이 되지 못하는 여러 재난을 경험했고, 아마도 기후 앞에서도 그럴 공산이 크다. 그렇다면 마찬가지로 에너지 자립과 식량 자급, 사회적 연대의 구축을 위해 노력하는 정부를 만드는 것이 가장 확실한 기후위기 프레퍼가 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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