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소희, 마스크 못 벗는 진짜 이유

2023.02.14 03:00 입력 2023.02.14 10:40 수정

지난 2월8일 전북 특성화고 여학생의 자살 사건을 다룬 영화 <다음 소희>(정주리 감독)가 개봉해 여러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소희(이시은 역)는 현장실습으로 나간 콜센터에서 5개월간 일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배두나는 영화 속 경찰로 등장해 소희의 죽음을 파헤치며 어른들이 어떻게 한 학생을 죽음으로 내몰고, 또 외면했는지 보여준다. “내 얼굴 봐서 참아”라는 학교 선생님, “오히려 우리가 피해자”라며 따지는 기업체, “적당히 합시다. 그다음은요?”라며 훈계하는 교육청, “개인의 성격 탓”으로 수사를 종결하려는 경찰. 영화는 제목처럼 주인공 소희가 끝이 아님을, 그 어디엔가 소희의 ‘다음’이 될 누군가에 주목해주길 요청한다.

김관욱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김관욱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영화에서 학교 선생님은 소희가 대기업(하청) 취업에 성공한 본보기가 되길 원했다. 현장을 확인하지 않은 채 자신과 학교의 실적을 위해 인내와 헌신을 강요했다. 소희 역시 자신이 실패의 본보기가 되기 싫었다.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킨 실패자는 학교에서 ‘빨간색 조끼’라는 낙인을 입어야만 했다. 결국 학교의 실적을 위해 학생은 ‘좋은’ 본보기든 혹은 ‘나쁜’ 본보기든 둘 중 하나로 쓰일 운명이었다. 그곳에는 ‘인간’ 소희는 없고, 그저 ‘다음’ 소희만 있을 뿐이었다.

그럼, 낙오자가 아닌 좋은 본보기로 생존하기 위해 학교가, 기업이 가르쳐 주는 것은 무엇일까? 영화 속 소희는 기업의 이윤을 위해 어떤 욕설에도 흔들리지 않는 친절함이라는 상품을 제조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 대가는 실적에 따른 소액의 인센티브였다. 결국, 소희는 고객을 위해 ‘친절함’을 만들고, 이어서 자신의 ‘수치심’을 감내하며, 마지막에는 높은 실적을 위해 그 어떤 상황에도 ‘무감각’해지는 법을 터득해야만 했다. 그렇게 감정노동은 최종적으로 감정 ‘없는’ 노동을 요구하며 그녀가 기계가 되길 원했다.

<다음 소희>는 일터에서 본보기라는 일종의 압력이 꿈 대신 무감각을 키우게 만드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런데 소희의 다음 차례는 오직 특성화고 학생일 뿐일까? 친절하기를, 수치심을 인내하기를, 그리고 상황에 무감각해지기를 요청하는 것은 어디 이곳뿐일까? 경찰 배두나가 찾아갔던 책임자들은 처음에 그녀에게 친절하게 응대했지만, 결국 적당히 ‘무감각’하지 못한 그녀를 한심한 듯 나무란다. 배두나가 “누구 하나 내 탓이라 말하는 사람이 없다”고 항변했던 것처럼 현실은 최종적으로 자신들의 실적을 핑계로 타인의 아픔에 무감각해지길 요구한다. 콜센터가 소희에게 가르치려 했던 것처럼 말이다.

이렇듯 사회는 나를 지워버리면 좋은 본보기가, 나를 지키면 나쁜 본보기가 된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최소한의 나를 지키기 위해선 그저 그 어떤 본보기도 되지 않게, 튀지 않게, 모나지 않게 상황에 맞게끔 순응하는 법을 터득하는 수밖에 없다. 결국, 가장 많은 말을 하는 상담사는 나와 남에 대한 침묵을 배우는 셈이다. 마치 마스크를 쓴 채 얼굴표정을 들키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마스크가 지닌 또 다른 기능을 마스크 없이 체득하는 것이다. 이처럼 한국사회는 팬데믹 이전부터 투명한 마스크 쓰기를 이미 종용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최근 여러 외신에서 한국인들이 실내마스크 착용이 완화되었음에도 마스크를 벗지 않는 이유에 대해 특종인 듯 나름의 해석을 내놓았다. 타인에게 폐가 되기 싫어서, 민낯을 공개하는 것이 부담돼서 등 감염과 외모 등에 대한 논의가 보도되었다. 모두 다 중요한 이유겠지만, 앞서 소희가 학습했듯 마스크는 공기를 필터링하는 것 말고도 많은 사회적 기능을 담당한다. 마스크 3년이 그 사회적 기능, 특히, 윤리적 상호작용에 변화(나는 이를 ‘윤리적 안도감’이라 부른다)를 초래했을 수 있다. 마스크로 인해 내 감정에 대해 일상에서 주의해야 할 긴장감이 완화되고, 딱 그만큼 타인에 대한 우리의 윤리적 공감력도 반응 정도와 속도 측면에서 축소되었을지 모른다.

이제 탈마스크 문제는 편안한 ‘생리적’ 숨쉬기를 선택할 것인가, 혹은 완화된 ‘윤리적’ 숨쉬기를 지속할 것이냐로 확장된 듯싶다. 마스크 착용 완화 소식이 전해진 후 <다음 소희>가 개봉되었고, 나는 그 제목이 마치 모두가 마스크를 벗지 않는 이유처럼 들렸다. 서로가 소희의 ‘다음’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마스크 속에서 침묵에 익숙해진 채 안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얼굴을 드러내야만 했던 그 누군가처럼 또 다른 본보기가 되기 싫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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