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터, 일터, 그리고 삶터 나누기

2023.02.16 03:00 입력 2023.02.16 03:04 수정

배움터(학교)와 일터(직장), 그리고 삶터(주거공간)를 선택하는 일은 새로 사회에 진입하는 청년세대에게 필수적인 일이다. 그런데 이 선택과정이 모두 전쟁터가 되어 버렸다. 절대적인 공급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질 낮은 공급이 전체의 절반을 넘는 저질 공급 현상 때문이다.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배움터, 일터, 삶터에 대한 경쟁은 희소성에서 나타나는 획득경쟁이 아니라 양극화된 배치 아래에서 ‘질 좋은 쪽’을 선점하려는 경쟁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말하는 ‘질 좋은 교육’ ‘질 좋은 직장’ ‘질 좋은 집’의 가치는 활용에 따르는 사용가치가 아니라 시장이 매긴 교환가치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학습’과 ‘노동’, 그리고 ‘주거’라는 본래적 가치는 희석화되는 반면, 시장경쟁이 부여한 거품을 잔뜩 품은 교환가치가 종종 ‘로또’적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교육·노동시장·부동산 문제의 기본이다.

교육·취업·주거환경 경쟁은 서로가 서로의 꼬리를 무는 악무한의 연속성을 갖게 되는데, 여기에서 한번 ‘질 좋은 쪽’을 선택하게 되면 그 가치가 로또당첨처럼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하는 반면, 처음부터 ‘질 나쁜 쪽’을 선택당하게 된 쪽의 가치는 늘 제자리걸음을 하게 된다. 결국, 소수의 좋은 대학-직장-주택의 사이클의 열차에 올라타는 청년집단과 그 반대 열차에 올라타야 하는 청년집단 간의 격차가 지속적으로 벌어진다. 즉, ‘초기에’ 어떤 것을 선택하는지에 따라 ‘평생에 걸친’ 일생의 궤도가 달라진다.

처음에 아파트를 사지 않으면 평생 빌라를 못 벗어난다. 처음에 대기업에 입사하지 않으면 평생 절반 수준의 임금에 시달려야 한다. 처음에 SKY 대학에 입학하지 않으면 평생 학력 핸디캡을 갖게 된다.

물론, 어느 열차를 탈 것인가의 선택과정은 공정하지 않다. 기득권이 끼어들어 특권을 세습하기 가장 좋은 장치들이기 때문이다. 부모찬스로 법전원과 의전원에 입학하는 자녀들과 학연카르텔, 정치인과 공기업 취업 부정 연줄, 그리고 대대로 세습되는 재벌과 부동산 건물주들의 모습은 흙수저로 태어나 자신의 힘만으로 이들을 성취해나가야 하는 수많은 청년들을 좌절시킨다. 이들에게 기성세대나 특권층은 원망과 저주의 대상이 된다.

현재까지의 해법은 늘 ‘공급량 확대’와 ‘공정성 보장’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에 맞춰져 있었다. 대학을 늘리고 입학시험을 공정하게 하며, 일자리를 늘리고 취업경쟁을 공정하게 하고, 또한 주택 공급량을 늘리고 분배를 공정하게 하겠다는 식이다. 하지만 역대 정부를 통틀어 성공한 정부를 보지 못했다. ‘질 좋은’ 공급을 늘리지 못하고, 단지 부실 대학, 계약직과 알바, 부실 임대아파트를 늘리는 데 그쳤다. 선택의 공정성을 제대로 높이지 못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사이에 사회지도층과 특권층 자녀들은 손쉽게 상향 열차에 탑승했다.

문제의 핵심은 ‘질 낮은 공급량’의 품질을 획기적으로 제고함으로써 전체적인 양극화의 차이를 줄여나가는 것이다. 밑에서부터 위로 밀어 올려 격차를 줄여나가는 접근법이다. 지방의 거점 국립대학들의 질을 획기적으로 높이고, 계약직(무기직)과 정규직의 장벽을 트며, 지역의 살 만한 동네와 주거여건을 만드는 일들은 더욱 속도를 높여야 한다.

특히 문재인 정부에서 시작했던 정규직·비정규직 이중구조 개선의 동력이 상실된 것은 참으로 안타깝다. 정부 산하 기관들에서도 무기직의 경력과 직급을 인정하지 않아서 정규직과의 임금격차가 날로 벌어지고 있다.

헌법은 교육, 직업, 주거의 문제를 자유권을 넘어서는 사회권적 기본권으로 본다. 헌법은 교육을 받을 권리(31조), 근로의 권리(32조), 혼인과 가족생활, 보건에 관하여 보호를 받을 권리(36조), 사회보장을 받을 권리(34조) 등을 분명히 규정하고 있고, 그 아래 개별법의 형태로 교육관련4법, 근로기준법 및 청년고용촉진특별법, 그리고 주거기본법 등이 청년세대의 교육과 직업획득, 그리고 주거 및 복지에 관한 국가의 의무를 명시하고 있다.

청년들에게 질 높은 교육과 직업, 그리고 주거환경을 공급하는 일은 결코 시장의 자비로움에 기댈 일이 아니다. 자유민주주의적 시장주의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 교육개혁과 노동시장개혁, 그리고 부동산개혁을 한 바구니에 담을 수 있는 ‘보이는 손’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서는 진보성향의 정부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특권적 구조를 해체하고 사회민주주의적 평등성을 전면화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결코 윤석열 정부의 교육·노동시장·연금의 3대 개혁이 전제로 하는 비특권층의 양보와 희생이 여기에서도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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