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가사도우미가 저출생 극복 대책이라는 정부

2023.03.27 03:00 입력 2023.03.27 03:02 수정

한 지인은 자신의 형제자매가 4명인데 그중 2명만 결혼했고, 아이는 단 1명뿐이라고 했다. 그 아이가 훗날 커서 부양해야 할 어른들이 이 가족 내에서만 8명이라고 한탄한 적이 있다. 실제로 주변에는 30대를 넘어 40~50대를 홀로 살아가는 지인 및 친구들이 적지 않다. 지난달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한국의 합계출산율(0.78명) 수치는 그다지 놀라운 일도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59명)의 절반인 셈인데 서울은 더 심각해 출생률이 0.59명에 그친다. 인구학자인 조영태 서울대 교수는 “서울은 이미 멸종의 길에 들어섰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문주영 전국사회부장

문주영 전국사회부장

이런 상황에서 최근 정책입안자들이 내놓은 해법 중 하나가 ‘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이다. 시대전환 소속 조정훈 의원은 지난주 ‘최저임금 적용 없는 월 100만원의 외국인 가사도우미법’을 발의했다가 논란이 일자 철회했지만 하루 만에 재발의했다. 현행법은 가사서비스 종사자에 대해서도 최저임금 적용을 의무화하고 있는데 이주노동자에 대해선 이를 적용하지 않도록 개정하자는 것이다. 사실 이 정책은 지난해 9월 오세훈 서울시장이 국무회의에서 먼저 건의한 바 있다. 당시 오 시장은 “한국에서 월 200만~300만원 드는 육아 도우미가 싱가포르에선 외국인 가사도우미로 월 38만~76만원 수준”이라며 “양육에 초점을 맞춘 정책”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 정책은 수십년 전 이를 도입한 홍콩·싱가포르 등에서조차 저출생 대책으로 그 효과를 판단하기에는 무리라는 지적이 나온 지 오래다.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 배경이 애초부터 출생률 제고가 아닌 여성들의 사회진출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홍콩의 경우 1970년대 중반 이후 비약적인 경제성장으로 노동력이 부족해지자 여성, 특히 기혼여성의 노동 시장 참여를 독려했고,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은 그 차원에서 이뤄졌다. 싱가포르도 마찬가지다. 외국인 가사도우미 제도를 허용한 1978년 이미 출생률이 1.79명으로 세계에서 가장 낮았고, 계속 줄어 2020년 1.1명을 기록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2020년 전 세계 210개국 가운데 출생률이 가장 낮은 국가는 한국(0.84명)이었고 그다음이 홍콩(0.87명)이었다. 싱가포르 역시 출생률 순위가 205위인데 한국이 출생률 세계 최저 수준인 이 두 나라를 본받아 저출생을 극복하겠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게다가 월 100만원에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이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와 관련해 이민정책연구원이 발표한 ‘가사분야 외국인 고용의 쟁점: 해외 사례 연구’ 보고서를 보면 싱가포르에서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고용하려면 정부에 5000달러의 보증금을 예치하고, 매월 300달러의 고용부담금도 내야 한다. 1만달러 한도의 개인상해보험, 정기 건강검진비, 항공료 등도 지원해야 한다. 비용 면에서 그리 싼 편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한국은 지역 갈등이 여전하고 중국 동포에 대해서조차 적대적인 분위기가 팽배해 동남아 출신 외국인 가사도우미 문제는 또 다른 인권문제와 계층 갈등을 야기할 수 있다. 싱가포르에서 외국인 가사노동자들은 6개월마다 임신 검사를 받아야 하고, 임신할 경우 즉시 추방되는 등의 방침 때문에 인권 침해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정부의 저출생 극복 대책들 중 황당한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국민의힘 정책위원회는 최근 20대에 자녀를 셋 낳은 아빠의 병역을 면제하는 방안을 검토했다가 철회했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역시 지난 1월 아이 셋을 낳으면 4000만원의 대출을 탕감해주는 헝가리 모델을 들고 나왔다가 철퇴를 맞았다.

지난 15년간 정부가 저출생 극복 대책에 쏟은 예산만 280조원이라는데 이런 ‘아니면 말고’ 식의 대책들만 쏟아낸다면 출생률은 오르지 않을 것이다. 사실 젊은 여성들은 아이 낳기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기를 만한 여유가 안 되기 때문에 못 낳는 경우가 더 많다. 주변 젊은 여성들 중 상당수가 난자 냉동에 관심이 많은 것도 이를 방증한다.

결국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는 적절한 사회적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한데 현 정부가 주는 시그널은 오히려 그 반대다. 정부의 가르침대로라면 젊은이들은 이제 주 60시간 이상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아이는 셋 이상 낳아 국가에 이바지해야 하며, 그 아이들은 늘봄학교에서 저녁 8시까지 남아 부모 없이 저녁을 먹어야 한다. MZ세대가 정부의 출생대책과 노동대책에 대해 조롱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데도 그들은 여전히 그 이유를 모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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