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는 독점기업이 나라를 힘들게 한다

2023.07.14 03:00 입력 2023.07.14 11:19 수정

[김경식의 이세계 (ESG)] 잘나가는 독점기업이 나라를 힘들게 한다

요즘 현대차·기아의 성공 질주가 화제다. 삼성전자의 부진으로 상대적으로 돋보이는 면도 있지만 현대차 자체적으로도 잘나가고 있다. 판매 대수 자체도 좋지만 세계 지역별, 차종별 판매 구성도 좋다. 수익성도 역대 최고다. 결과적으로 차를 비싸게 파는 게 아니라 비싼 차가 잘 팔려서 그렇다. 그래서 이 기조가 좀 오래갈 것 같다. 많은 이들이 성공 요인을 분석하고 있다. 오너의 혜안과 결단력, 조직력, 서플라이 체인망, 환율 등 나름대로 근거를 찾고 있고 일면 타당성도 있다. 영광의 이면에는 누군가의 희생도 있을 것이지만.

김경식 ESG네트워크 대표·<착한 자본의 탄생> 저자

김경식 ESG네트워크 대표·<착한 자본의 탄생> 저자

그 이유를 좀 더 멀리, 넓게 보고자 한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지난 50년 동안 국내 자동차 산업의 치열한 경쟁, 그로 인해 구축된 자동차 ‘산업’ 가치사슬이 경쟁력의 뿌리에 있다고 본다. 외환위기 전 우리나라에는 현대차, 기아차, 대우차, 삼성차, 쌍용차, 아세아자동차, 동아자동차 등이 있었다. 이들의 치열한 경쟁은 관련 ‘산업’의 치열한 경쟁을 수반했다. 그 결과 자동차 산업의 가치사슬은 탄탄하게 구축됐고, 수입자동차의 국내 시장 잠식도 일정 수준에 묶이게 했다. 또한 자동차는 최종 소비제품이다. 이는 제조사에 다양한 소비자의 입맛을 바로 느끼게 해서 시장 분석과 대처 능력을 높여줬다. 그러한 대처 능력은 자동차의 패러다임 시프트(내연기관에서 전동화차로 전환)에서 더 빛을 발하고 있다.

그런데 반대의 기업도 있다. 바로 한국전력이다. 현재 한전은 전력 판매를 독점하고 있다. 한전의 역사는 길다. 1887년 3월6일 밤, 명성황후 시해(1895년) 장소로 잘 알려진 경복궁 안쪽 건천궁에 백열전등에 불이 밝혀졌다. 중국 자금성과 일본 궁성보다 2년이나 앞섰다. 이후 1911년 전기사업법이 제정되고 현재까지 한 세기 가까이 전력산업은 구조개편을 이어왔다. 공적 경쟁과 사적 경쟁을 되풀이하다가 1961년에 100% 국영 한국전력(주)으로, 이후 1982년 100% 정부 출자의 한국전력공사(한전)로 이어졌다. 그러다 1997년 외환위기를 맞아 발전부문은 한국수력원자력과 민영화를 전제로 한 석탄 발전 5개사로 분할됐다. 전력거래소를 설립해 도매시장을 만들었지만, 소매시장은 한전 독점으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한전은 전기의 상품적 특성을 활용하면서 나름대로 주어진 역할을 잘 수행했다. 상품으로서의 전기는 특이하다. 무형재이면서 대체재가 없다. 가격 외에는 차별화 요소가 없다. 수출입도 안 된다. 가격이 싸든 비싸든 꼭 필요한 재화다. 그래서 정부는 가격 통제를 하지만 투자 보수율 규제를 통해 안정적 전원 공급을 위한 재투자 비용을 보장해주고 있다. 덕분에 그동안 우리는 값싼 전기를 마음껏 사용해왔다. 그런데 계속 그렇게 갈 수는 없게 됐다. 탄소중립 시대라는 에너지 패러다임 시프트가 도래했다. 치열한 경쟁을 통한 전력산업은 없고 전력 독점기업만 있다 보니 변화를 리딩하기는커녕 적응도 못하고 있다.

시장의 경쟁을 통한 다양한 가치사슬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 독점기업에 속박되는 부품회사만 존재하게 됐다. 독점기업의 논리를 산업의 논리로 인식하게 됐고, 그 결과 우리나라 재생에너지는 아직도 7% 수준에 머물고 있다. 당장 기업의 재생에너지 사용(RE100)이 안 되고 있다. 한전의 송배전망을 이용해 구입하는 재생에너지 전력구매계약(PPA) 요금이 너무 비싸다. 여기저기서 불만이 제기되자 요금제도가 자주 바뀌고 있다. 시장의 예측이 더 불투명해지다 보니 투자가 안 되고 당연히 공급도 부진해지고 있다. 정부가 ‘우리도 탄소경제에서 수소경제로 이행한다’고 선언은 했지만 현실은 요원하다.

현대차와 한전의 중간쯤에 있는 기업이 철강회사 포스코다. 한국 경제 설계자들은 일찍이 철강산업의 중요성을 알고 1968년 포항제철(포스코)을 창립하고 전폭적인 지원을 했다. 세금과 이자감면, 정부보증, 전기요금 할인 등 정부의 가용예산을 끌어모아 ‘싹쓸이 지원’을 했다. 포스코는 이에 대한 보답으로 품질 좋은 철강재를 값싸게 공급해 주었다. 포스코 신화가 만들어지고 그 결과 독점기업 포스코의 논리가 철강산업의 논리가 됐다.

철강회사에 ‘고객’이란 용어가 사용된 것은 2010년 현대제철 당진제철소가 가동되면서부터다. 그전에는 ‘수요가’란 용어를 사용했다. 그만큼 포스코의 철강재 공급(배분)에 목말라 하다 보니 업계의 통용되는 호칭이 고객이 아니라 수요가였다. 이렇다보니 치열한 경쟁을 통한 산업의 가치사슬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 기업에 종속되는 충성스러운 협력사만 존재하게 된다. 경쟁적 가치사슬이 없다는 것은 평소 다른 생각을 않게 되고, 상황변화가 오면 대처를 못하게 된다(고철을 녹여 철근 등 건축자재를 생산하는 전기로 철강사 7개사는 용광로와 가치사슬이 다르다).

지난 50년간의 포스코 성공이 역설적으로 철강회사 포스코의 미래를 어둡게 만들고 있다. 여기도 패러다임 시프트가 일어나고 있다. 탄소중립 시대를 맞아 수소환원 제철로 가야 한다. 그런데 지난해 3월 지주회사 포스코홀딩스 출범으로 철강회사 포스코는 중대한 기로에 섰다. 지주회사 출범을 하면서 기존 주주들의 요구로 철강회사 포스코는 상장을 못하도록 정관에 못을 박았다.

포스코는 2050년까지 기존 용광로를 모두 수소환원 제철로 전환해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고 선언했다. 50조원 이상이 들어가는 투자금액을 어떻게 조달할지 걱정이다. 지주회사 홀딩스는 이미 2차전지 소재 사업에 향후 그룹 투자비의 46%를 집중하는 등 진로를 분명히 하고 있다. 182개 계열사를 거느린 포스코그룹은 잘나가지만 모태인 철강회사 포스코는 앞길이 불안하다. 과거처럼 정부의 싹쓸이 지원은 불가능하고, 자체 자금 조달도 한계가 있다. 2030년까지 탄소 10% 감축을 선언했으면서도 2030년에 끝나는 배출권거래제 4기에도 무상 할당을 요구하는 속사정이 이해가 간다.

독점기업이 잘나가니까 우리는 박수를 쳤고, 계속 그렇게 될 줄 알았다. 잘나가는 그들이 그렇게 말하니 그런 줄 믿었다. 그러나 이제 세상은 자기가 살기 위해 변화를 요구한다. 그렇다고 한정된 시장에서 완전경쟁을 할 수도 없다. 결국 깨어 있는 시민단체와 언론이 ‘워치 도그(watch dog·감시견)’ 역할을 해야 한다. 기업·시민단체·언론의 긴장된 균형이 ESG경영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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