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가을 바람이 선선해지기 시작했으니 건강검진센터가 더 바빠지는 시기가 돌아오고 있다. 20~30대 젊은 세대들의 국가검진 수검률이 낮은 것이 걱정이라는 1~2년 전 기사를 읽은 뒤부터 나는 우리 의료기관에 내원하는 20~30대들이 국가검진을 잘 받고 있는지 열심히 챙기기 시작했다.

우리 의료기관을 찾아오는 20~30대 환자들 중에서는 트랜스젠더들이 많다. 자연스레 젊은 트랜스젠더들의 국가검진을 챙기고 있다. 그런데 자신이 올해 국가검진 대상자라는 사실은 둘째치고, 국가검진이라는 게 존재하는지조차 모르는 분들도 많다.

어차피 트랜스젠더 성별 확정을 위한 호르몬 치료를 받기 시작하면, 호르몬 수치가 안정적인 궤도에 올라가기 전까지는 3개월에 한 번씩, 안정적이 된 후에도 최소 6개월이나 1년에 한 번씩은 전반적인 신체검진을 포함해 혈액검사를 해야 한다. 그런 검사를 위해 내원한 분들에게 국가검진을 권하는 경우가 많다.

“오늘 혈액검사 중 일부를 국가검진으로 돌려서 하십시다. 원래 혈액검사 해야 하는 때인데, 마침 홀수년 출생자시니 올해 국가검진 대상이 되시거든요. 일부라도 국가검진으로 하면 비용도 절약되고, 같은 검사를 이중으로 하지 않아도 되니 의료자원 낭비도 없고, 국가검진 수검률도 높아지니,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좋은 일이지요.”

하지만 트랜스젠더 국가검진이 말처럼 쉬운 건 아니다. 트랜스젠더들의 건강검진을 위해서는 여러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소변 검사를 해야 되니까 성중립 화장실이 있어야 하고, 탈의를 위해 성중립 탈의실이나 1인용 탈의실이 있어야 한다.

트랜스젠더 검진의 원칙은 현재 지니고 있는 장기에 대해서는 검진을 하고, 수술도 절제된 장기에 대해서는 검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에 맞춰 건강검진 항목을 잘 짤 수 있어야 한다. 호르몬 치료를 해왔던 기간이나 어떤 수술을 받아왔는지에 따라 건강검진 항목을 개인별로 맞춰 주어야 하는 것이다. 주민등록번호로는 남성이지만 자궁경부암 검사가 필요한 분들께 적절한 검사를 추천할 수 있는 기본 지식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건강검진 결과를 해석하고 판독할 때도 수검자가 트랜스젠더임을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주민등록번호로는 여성이지만, 트랜스남성으로 정체화한 이후 남성 호르몬을 꾸준히 맞아왔기에 생리적으로는 남성에 훨씬 가까운 상태라면, 혈색소 수치나 간 수치, 신장 기능까지 모두 남성의 기준에 맞춰 해석해야 한다. 여성의 기준에서 보면 정상적인 혈색소 수치이지만 남성 기준에서는 빈혈일 수도 있고, 남성 기준에서는 정상적인 신장기능이지만 여성 기준으로는 신장기능 저하일 수도 있다. 성별에 따라 다른 참고치를 보이는 대표적인 검사들이 혈색소(빈혈), 간기능, 신장기능 등이니, 최소한 이런 항목들만이라도 잘 해석해야 한다. 그러니까 이런 조건들을 잘 갖추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호르몬 치료를 시작하기 위해 우리 의료기관에 처음으로 방문하는 트랜스젠더들에게 나는 구구절절 설명을 한다. 40세, 50세, 60세에는 어떤 건강검진을 해야 되는지, 종이에 밑줄을 그어가며 설명한다. 대부분 20~30대 분들이라 너무 먼 일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기는 하지만, 그래도 열심히 들어주신다.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트랜스젠더에게 건강검진과 관련한 정보 자체를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강조하는 지점이 좀 다르기도 하다. 내가 에너지를 실어서 전달하고 싶은 말은 ‘우리의 삶은 중장년, 노년에 이르기까지 계속 이어진다’는 얘기이다.

우리 삶은 40세, 50세, 60세가 되도록 이어지고 있을 것이니, 모쪼록 잘 삽시다. 그 나이가 될 때까지 국가검진 받으며 건강하게 지냅시다, 쉬이 죽지 맙시다.

추혜인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살림의원·가정의학과 전문의

추혜인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살림의원·가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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