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경의 한뼘 양생] 병뚜껑을 열지 못한다고?

발단은 한 회원이 홈페이지에 올린 생활 글이었다. 3년 정도 느슨하게 저강도 필라테스를 했더니 선명한 복근까지는 아니어도 제법 힘이 붙어 예전보다는 병뚜껑을 좀 쉽게 딸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문제는 거기에 줄줄이 붙은 댓글이었는데, 이슈는 운동이 아니라 병뚜껑이었다. 한 친구는 방아쇠수지증후군 때문에, 다른 친구는 약해진 악력 때문에 병뚜껑을 못 딴다고 했다. 압권은, 잼을 샀는데 뚜껑을 못 열어 남편 퇴근을 기다렸고, 생수병 뚜껑을 못 열어 지나가는 사람에게 부탁했다는 어떤 회원의 고백이었다. 결국 젊은 회원 한 명이 ‘다용도 만능 뚜껑 따개’를 구매해 모두에게 안기면서 이 소동은 일단락되었다.

다행히 나는 아직 생수병 정도는 연다. 대신 회전근개파열로 칼을 들고도 사과를 반으로 자르지 못하며, 김치찌개용 참치캔을 따지 못하고, 요가 할 때 점점 안 되는 동작이 늘고 있다. 거기에 목디스크에 따른 방사통으로 늘 견갑골 주변이 뭉쳐 아프고 손목까지 저릿저릿해서 노트 필기가 어렵다. 아이를 낳아 키우고, 살림하고, 공부하고, 활동하고, 어머니까지 부양하면서 ‘열일’ 했던 내 근육은 마치 오래 입은 옷처럼 나달나달 삭고 터지고 뚫어져 끊어지기 일보 직전이다.

“꼬부랑 할머니가 꼬부랑 고갯길을/ 꼬부랑꼬부랑 넘어가고 있네”라는 옛이야기 ‘꼬부랑 할머니’는 단순하고 반복적인 입말이 주는 리듬감과 재미 때문에 동요로 그림책으로 오랫동안 사랑받았다. 그러나 현실의 꼬부랑 할머니가 동화책 속 꼬부랑 할머니처럼 따뜻하고 푸근하고 해학적인 존재인가는 생각해볼 문제이다. 왜냐하면 허리가 굽는 실제 이유는 골다공증으로 인한 연속 골절 혹은 오랜 밭일 등으로 인한 척추 변형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어머니도 몇달 사이에 2번, 1번 요추가 부러졌는데 두 번째 골절은 알아차리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벌어졌다. 의사는 기침만 해도 뼈가 부러진다고 나중에야 경고했다. 그리고 이런 척추질환은 다시 협착, 좌골신경통 등으로 이어지면서 격심한 만성통증을 유발한다.

알려진 대로 이런 근골격계 질환은 주로 여성에게 일어난다. 남성보다 상대적으로 뼈가 가늘고 골밀도가 낮은 데다 임신, 출산, 가사노동으로 평생에 걸쳐 뼈와 주변 근육이 스트레스를 받고, 갱년기에 이르러 에스트로겐 감소로 뼈 손실이 가속화되기 때문이다. 올 4월 농촌진흥청이 발표한 2022년 농업인의 질병 현황 조사에서도 여성이 남성보다 유병률이 높았고 70대는 50대와 비교하면 2.5배 정도 더 아팠으며 질병의 98%가 근골격계 질환이었다.

나는 일흔 살이 되어도 청바지에 툭 걸친 카디건이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는 영국 여배우 샬럿 램플링을 동경하고, <스트릿 우먼 파이터>라는 댄스 예능 ‘덕질’을 하면서 남몰래 ‘왁킹’을 배워보고 싶다는 꿈을 꾼다. 하지만 벌써 회전근개파열, 목디스크, 무지외반증, 무릎연골연화증 등 뼈와 근육이 빠르게 손상되고 있는 나는 격렬한 댄스가 그림의 떡이라는 것을 잘 안다. 그리고 샬럿 램플링처럼 되기보다 우리 엄마가 갔던 길, 여성들의 최빈도 노화 경로, 즉 지팡이, 보행보조기, 마지막엔 휠체어에 의존하는 노년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철학자 장 아메리는 늙는다는 건 점점 더 세계를 잃어버리고 자기 몸에 갇히는 것이라고 말한다. 몸은 더 이상 자신과 세계를 매개해주는 것이 아니다. 그에 따르면 몸은 헉헉거리는 숨소리, 염증에 시달리는 관절이고, 세계와 공간을 우리에게서 막아버리는 장애물이다. 이렇게 “몸은 감옥이 된다.”(<늙어감에 대하여>) 그는 서늘한 어조로 어떤 진실, 필라테스나 만능 병뚜껑 따개로는 노화에 저항할 수 없다는 사실을 냉정하게 말하고 있다.

얼마 전에 병뚜껑을 따지 못하는 친구와 사과를 자르지 못하는 내가 함께 ‘나이듦연구소’를 만들었다. 슬로건은 ‘다른 노년의 발명’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노화에 저항하겠다는 야무진 의지나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노년 담론을 만들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가진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는 늙은 여성의 몸을 비가시적인 것, 익명으로 만드는 세상에서, 늙어가는 몸에 대해 말하기, 더 디테일하게 말하기, 더 잘 말하기를 수행하고 싶을 뿐이다.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고통을 삭제하지 않고서도 몸의 감옥에 갇히지 않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다른 노년의 발명’은 점점 하찮아지는 몸을 가지고도 여전히 세상과 교섭하기를 원하는 나와 친구들의 절박한 실존 과제이다.

이희경 인문학공동체 문탁네트워크 대표

이희경 인문학공동체 문탁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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