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의 폭정에 반역하기

2023.12.01 21:02 입력 2023.12.01 21:03 수정

2199년, 인공지능이 인류를 지배한다. 인간은 1999년의 가상현실을 실재로 착각하면서 인큐베이터에 갇혀 사육된다. 네오는 ‘빨간 약’을 먹고 자신이 지금껏 정교하게 꾸며낸 환영의 세계에 살았음을 깨닫는다. 영화 <매트릭스> 이야기다.

두 워쇼스키 감독은 배우 키아누 리브스를 네오 역에 정한 다음에 필독서 세 권을 건넸다. 개봉 직후 리브스는 이렇게 인터뷰했다. “책들을 다 읽기 전에는 대본을 펴지도 말라고 하셨어요. ‘읽고 또 읽어. 뭐라고 쓰여 있는지’라고 하셨죠.” 그중 한 권은 과학저술가 로버트 라이트가 쓴 <도덕적 동물: 진화심리학으로 들여다본 인간의 본성>이었다.

진화심리학이 <매트릭스>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라이트는 최근에 낸 책에서 그 해답을 제시했다. 왜냐하면 진화심리학은 자연 선택이 어떻게 우리를 잘못된 길로 이끄는지 탐구하는 과학이기 때문이다. 다소 지나치게 내지른 말이긴 하다. 주의 사항 두 가지를 챙기자. 첫째, 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는 앞을 보지 못하는 기계적인 과정이다. 어떠한 의도도, 계획도 없다. 이해를 돕고자 잠시 자연 선택을 의인화했을 따름이다. 둘째, 자연 선택이 언제나, 예외 없이 우리를 허상에 빠뜨리는 것은 아니다. 자연 선택은 종종 우리가 외부의 실재를 정확히 인식하게 도와준다. 다만 이는 어쩌다 얻어걸리는 결과일 뿐이다.

자연 선택은 오직 하나에만 ‘관심을 기울인다’(맹목적인 과정임을 상기시키려고 따옴표를 넣음). 바로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일이다. 우리는 석기 시대 환경에서 조상들이 유전자를 후대에 전하는 데 기여했던 일들을 잘 해내게끔 자연 선택에 의해 ‘설계되었다’. 어떠한 감정과 생각이 우리의 일상을 빚어낼까? 외부의 현실을 정확히 알게 해주는 감정과 생각? 틀렸다. 올바르게 인식하건, 왜곡해서 인식하건 간에 먼 과거의 환경에서 유전자를 후대에 전달하는 데 도움이 되었던 감정과 생각이 우리의 일상을 채운다.

촉촉하고 쫀득한 마카롱을 예로 들어보자. 상상만 해도 진한 행복감이 밀려온다(내가 단것을 좀 좋아한다). 마카롱을 향한 내 긍정적인 느낌은, 슬프게도, 환영이다. 눈앞에 없는 것을 있다고 착각한다. 알다시피, 당류가 넘치는 가공식품을 너무 많이 먹으면 우울증, 당뇨병, 암에 걸리기 쉽다. 하지만 먼 과거 환경에서는 높은 에너지원이 드물었기 때문에 달콤한 음식을 갈망하는 심리가 인간 본성의 일부로 진화했다. 현대의 환경에서 마카롱은 실제로는 몸에 해롭지만, 우리는 마카롱은 언제나 옳다고 믿는 환영의 세계에 산다.

많은 사람이 진화적 시각이 맞는다면 우리의 마음은 생존을 높이게끔 작동하리라고 막연히 추측한다. 그렇지 않다. 자연 선택은 개체의 건강이나 생존 혹은 행복에는 일절 ‘관심이 없다’.

두 유전적 형질이 있다고 하자. 한 형질은 우리를 안락하게 하지만 다음 세대에 전달되지 못한다. 다른 형질은 우리를 괴롭히지만 다음 세대에 전달된다. 자연 선택은 ‘주저하지 않고’ 후자를 ‘택한다’. 번식은 위험한 사업이다. 화려한 꼬리를 자랑하는 수공작은 암공작의 시선을 끌지만, 포식자도 쉽게 끌어들인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등 따습고 배부른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낀다. 아프거나, 다치거나, 심지어 죽을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우리는 매력적인 이성을 유혹하고, 직장에서 승진하고, 가족에게 헌신하고, 남들로부터 인정받는다는 여러 목표를 향해 내달리도록 진화했다. 자연 선택의 유일한 관심사는 유전자의 전달이다.

꽉 막힌 도로에서 내 차 앞에 얌체처럼 끼어들기를 시도하는 운전자를 생각해보자. 내 분노는 지극히 정당하다고 느껴진다. 왜 우리는 사소한 시비에 불같이 화를 내도록 진화했을까? 고작 수십명이 함께 살았던 먼 과거 환경에서는 누군가 조금이라도 나를 착취한다면 즉시 본때를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너그럽게 넘어간다면, 고마워하기는커녕 나를 호구로 알고 계속 들볶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나이의 명예를 지키고자 싸움마다 마구 뛰어든 남성이 우리의 직계 조상이 되었다. 오늘 내 차 앞에 끼어들려는 운전자를 나는 다시 마주칠 일이 없다. 그럼에도, 큰 사고가 날지언정 우리는 앞차에 바짝 붙어 절대 양보하지 않음으로써 ‘정의’를 실현하려 한다. 물론 이 정의는 허상이다.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이 지구에서 인간만이 유일하게 유전자의 폭정에 반역할 수 있다고 했다. 유전자의 이해관계는 나의 이해관계와 일치하지 않음을 안다면, 우리의 마음이 만드는 환영을 감지할 수 있다.

전중환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진화심리학

전중환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진화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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