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모님의 돈가스 매장에는 오래된 주방도구들이 많습니다. 매장은 몇번의 리모델링을 거쳤지만 아직까지 용케 살아남은 것들이죠. 그중 하나가 주로 중식당에서 사용하는 웍입니다. 속이 움푹 들어간 커다란 냄비로, 간단한 튀김이나 볶음을 할 때 꽤 요긴하게 쓰입니다.
그런데 이 오래된 웍은 마치 무언가로 코팅된 것처럼 반짝거립니다. 이는 적어도 수개월 이상 사용하며 기름이 표면에 흡수되어 나타나는 현상인데요. 전문 요리점에서는 인위적으로 이런 상태를 만들기도 합니다. 이를 ‘길들이기’라고 하며, 그 방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웍을 고온에서 가열해 표면을 산화시킵니다. 그러면 얇은 산화막이 형성되는데, 그 막이 푸르스름한 색을 띠기에 이 과정을 ‘블루잉(bluing)’이라고도 합니다. 그다음은 중불에서 기름을 여러 번 칠해가며 오일층을 만드는데, 가열 과정에서 기름 분자들이 결합해 고체상태의 얇은 막이 형성됩니다.
길들이기는 고온에서 사용하는 주방도구에는 꼭 필요한 과정입니다. 길들이지 않으면 음식이 잘 눌어붙기 때문입니다. 물론 요리할 때 기름을 충분히 두르면 이를 방지할 수는 있지만, 자칫 요리가 너무 느끼해질 수도 있습니다. 길들여진 웍은 기름의 사용은 최소화하면서도 요리를 간편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렇다고 일반 가정에서 조리도구를 길들이기란 매우 번거로운데요. 요리 내공을 자랑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을 위한 제품이 있습니다. 바로 ‘테플론’으로 코팅된 것들입니다. 테플론 코팅은 견고하면서도 매끄러운 표면을 만들어주어 음식이 눌어붙는 것을 방지해줍니다.
1938년 미국의 거대 화학회사 듀폰에서 일하던 로이 플런킷은 냉장고에 쓰일 새로운 냉매를 개발하고 있었습니다. 냉매란 냉장고의 온도를 낮추는 데 사용되는 화학물질을 말합니다. 그는 여러 후보 물질 중 하나인 ‘테트라플루오르에틸렌’이란 가스를 용기에 넣어 보관했는데, 아주 황당한 경험을 합니다. 며칠 후 가스를 꺼내 실험을 하려는데 가스가 모두 사라져 버린 것이죠. 분명 단단히 밀폐를 했는데도 말입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가스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용기의 안쪽 벽면에 달라붙어 코팅이 되어 있었습니다.
가스 분자들이 서로 결합해 고체 상태의 얇은 막을 형성한 것입니다. 마치 웍에 형성된 오일층처럼 말이죠. 이렇게 만들어진 코팅용 물질이 테플론입니다. 테플론은 열과 화학약품에 강한 특성을 보여 처음엔 군수물자로 사용됐습니다. 원자폭탄을 개발하는 미국의 맨해튼 프로젝트에선 우라늄 농축설비의 밸브나 배관 등을 코팅하는 재료로 쓰이기도 했죠.
테플론이 주방에 처음 등장한 건 1956년. 프랑스 화학자 마르크 그레구아르가 테플론을 코팅한 팬을 만들고, ‘테팔’ 브랜드로 판매를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그는 낚싯줄이 엉키지 않게 하려 낚싯대를 테플론으로 코팅 중이었는데, 그의 아내가 프라이팬도 코팅하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냈다네요. 테팔은 ‘테플론’과 ‘알루미늄’의 합성어. 알루미늄 프라이팬에 테플론을 코팅한 제품이란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