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와 기억이 계속되기 위해서는

2024.02.18 19:50 입력 2024.02.18 21:40 수정

“내 친구들, 조문객들이 이상해 보이는 옷을 입고 있거나 장례 예절을 잘 지키지 않더라도 부디 눈총을 주거나 나무라지 마세요. 그 사람들은 살면서 죽음을 너무 많이 보았고, 힘든 일을 너무 많이 겪었습니다.”

연극배우 한 분이 <우리는 농담이(아니)야> 희곡집의 한 부분을 크게 낭독하고 있었다. 작품 속 유언장 대사의 일부였다. 트랜스젠더 극작가 이은용의 3주기 추모의 밤에선 참석자 모두가 그가 남긴 작품의 한 구절씩을 읽어가며 추모의 마음을 모았다. 마치 자신의 장례식에 찾아올 조문객을 미리 알기라도 한 듯 간절한 당부가 느껴진 문구였다. 누군가는 눈물을 흘렸고, 또 누군가는 눈을 감고 그를 떠올렸다. 나도 그의 작품 한 구절을 따라 읽으며, 이은용 극작가가 꿈꿨던 세상이 무엇일지 생각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변희수 하사의 순직 심사를 다시 할 것을 국방부에 권고한 지 1년이 되었다. 군 사망사고 진상규명위원회가 부당한 전역 처분 결정이 변 하사 사망의 주된 원인이 됐다며 국방부에 순직을 권고했지만, 육군은 변 하사의 사망을 순직이 아닌 ‘일반사망’으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트랜스젠더 군인 변희수가 빠르게 잊히길 바라는 듯 국방부는 지난 1년 동안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이은용 작가와 같은 해 유명을 달리한 변희수 하사의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사람의 기억력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카메라 앞에서 긴장한 표정으로 자신의 모습을 용기 있게 드러낸 변희수, 성별정체성과 상관없이 이 나라를 지키는 훌륭한 군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했던 그의 모습도 언젠가 사람들 기억에서 잊히게 될지 모른다. 성별의 법적 인정에 관한 법률안조차 발의가 쉽지 않은 한국 사회에 분노하고, 세상을 먼저 등진 사람을 그리워하는 추모 행동은 계속 이어지겠지만 이조차 점차 옅어질 것이다.

애도와 기억이 계속되기 위해서는 희곡집을 모두가 낭독했듯이, 사람이 모이고 말하고 떠올려야 한다. 변희수 하사를 지원했던 군인권센터와 청소년 성소수자 지원센터 띵동이 함께 ‘변희수재단’(가칭) 준비를 시작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다양한 방식으로 추모가 계속 이어지고, 추모가 추억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변희수 하사가 마주하지 못한 내일을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나가자는 사회적 제안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변희수 하사도 피하지 못한 트랜스젠더 청소년·청년들이 겪는 차별을 해소하는 일, 그것이 곧 추모와 만났을 때 애도와 기억은 사회 변화를 이끌어내는 힘을 발휘할 거라 믿는다.

2월27일 변희수 하사 3주기 추모의 밤은 변희수재단 비전 발표와 함께 진행된다. 기억하되 마침표를 찍지 않고, 슬퍼하되 변희수의 내일을 함께 만들자는 제안에 많은 분이 응답해주었으면 좋겠다. 애도와 기억은 계속되어야 한다.

정민석 청소년성소수자지원센터 ‘띵동’대표

정민석 청소년성소수자지원센터 ‘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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