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버린 ‘주택정책 시계’를 다시 돌리자

2024.02.25 20:07 입력 2024.02.25 20:16 수정
이한솔 한국사회주택협회 이사장

새 주택정책이 발표되어도 예전처럼 관심을 못 끄는 이유는 기대도 우려도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여당과 야당,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모두 피차일반이다. 재개발 기준의 일부 완화, 신혼부부 대출 확대, 수만호의 주택 공급 등 예전 정책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일 게 뻔하니 사람들도 듣는 둥 마는 둥인 게 당연하다.

재개발·재건축에 대한 규제를 확 풀어버리겠다며 지난 1월 윤석열 대통령이 발표한 ‘국민 주거안정을 위한 주택 공급 확대 및 건설경기 보완방안’을 보라. 일각에선 우스갯소리로 담당자가 일을 정말 하기 싫었던 게 아니냐는 평가까지 이어졌다. 노른자 땅이라 일컫던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도 지지부진한 마당에, 글자 몇 마디 바꾼다고 얼어붙은 시장이 풀릴 리 없다. 수익 모델, 건설원가, 금융 등 필수 고려 사항을 무시하고, 재개발 욕망만 불어넣으니 개인에게도 사회에도 해롭기만 하다. 신기루에 불과한 정책이기에 투기 광풍과 세입자들의 쫓김 문제에 대해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다행이지만, 총선을 이기고자 무의미한 세금 낭비만 하고 있는 정치의 수준이 씁쓸하다.

정부가 무능하다면 무주공산으로 야당이 주거 문제 해결을 선점할 기회일 것 같지만, 그런 의지가 보이지는 않는다. 지역구의 민원 해결용 규제 완화를 제외하고는 정책적으로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 가령 프랑스 등 선진국들에서는 비혼가구의 신생아 비율이 전체의 절반을 넘어서며 출생률의 반등이 있었는데, 20년째 신혼부부 주택에만 주목하며 저출생 문제를 해결한다고 주장하니 답답한 노릇이다. 변화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다면 어떠한 시대적 과제도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한쪽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공급 부족’만을 외치고 있다면, 다른 한쪽은 과거의 패러다임에 얽매여 있어 ‘올드함’으로 귀결되는 상황이다.

전세사기·깡통전세, 부동산 PF 붕괴, 미분양 속출 등 시장의 실패가 드러나며 국가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다. 지난 시기의 패러다임과 정책을 답습할 것이 아니라, 지금은 완전히 새로운 질서로의 재편을 고려해야 한다. ‘전세’라는 사금융에 의존하는 주택 공급 구조를 재편할 금융 시스템을 구축하고, 결혼 여부와 무관하게 가구 구성에 맞는 주택정책을 마련하고, 투기적 수요에 따른 재개발이 아닌 탄소 배출량까지 고려한 도시 정비 모델을 설계해야 한다.

제대로 해내는 것이 하나도 없는 국가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는 것은 욕심이라는 것을 안다. 백번 양보해서 새롭고 대단한 방향을 제시하기 어렵다면 과거의 실수라도 바로잡자. 지난 토요일에 진행된 ‘전세사기 피해자 1주기 추모문화제’에서는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아 여전히 앞길이 막막한 피해자들의 호소가 이어졌다. 국가 시스템을 믿었다가 전 재산을 잃은 사람들에게 책임회피가 아닌 실질적인 구제책 마련을 통해 최소한의 역할이라도 해야 할 때다.

이한솔 한국사회주택협회 이사장

이한솔 한국사회주택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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