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에겐 보편적 빈곤 정책이 없나

2024.03.03 19:55 입력 2024.03.03 19:59 수정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죄송합니다. 마지막 월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두 번의 죄송하다는 인사가 쓰인 봉투 속 70만원, 송파구 반지하방에 살던 세 모녀가 세상을 떠나며 남긴 것이다. 이 사건 이후 이른바 ‘송파 세 모녀법’이 제·개정됐다. 2024년 2월은 이들의 죽음이 알려진 지 10년이 되는 날이었다.

법 제정 당시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운영 원리와 목표를 아주 단순하게 도식화하면 ‘최저생계비 이하로 살아가는 사람에게 최저생계비만큼’을 보장하는 것이다. 한 사람이 살아가는 데 100만원이 필요하다면 50만원의 소득만 있는 사람에게 50만원을 지급하는 식이다. 서울시는 안심소득이 무척 혁신적인 소득보장제도라고 말하지만 사실 안심소득과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원리는 동일하다. 다만 서울시의 안심소득은 선정 기준이 더 높고, 노동소득에 따른 공제 비율이 높게 설계되어 있다. 만약 그 수준으로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선정 기준과 보장 수준을 높인다면 두 제도 간에는 차이가 사라진다. 오히려 기초생활보장제도는 단지 현금이 아니라 의료, 교육, 주거 등 다른 현물 복지를 포괄하고 있으므로 훨씬 낫다.

가난한 이들의 죽음이 발생할 때마다 기초생활보장제도가 문제로 지적되지만 사실 기초생활보장제도는 매우 보편적인 빈곤 정책을 지향하며 만들어졌다. 생활보호법과 달리 근로능력 여부와 관계없이 전 국민을 신청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 이를 청구하는 것이 권리임을 명문화했다는 점이 이를 보여준다. 다만 이 선언은 단 한 차례도 실현된 바 없다. 법 내부의 모순, 시행령과 시행규칙이 목표를 역행했다.

지난 10년간 다양한 제도 변화를 겪으며 수급자 숫자는 약 160만명에서 250만명가량으로 증가했다. 이 변화를 이끈 것은 단연 주거급여 수급자의 증가인데, 근로능력 평가가 없고 부양의무자 기준이 완전히 폐지되었다는 특징이 코로나19를 거치며 수급자를 순증시켰다. 수급자가 늘었다고 사각지대가 해소된 것이라 평가하긴 이르다. 주거급여를 지원받더라도 생계, 의료급여에서 제외된 이들은 생활이 매우 곤궁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들은 얄팍한 수준의 복지만 연결된 ‘미충족 사각지대’다.

정부는 연일 약자 복지를 선전하며 기초생활보장제도 생계급여 인상을 중요한 정책적 성과로 내세우지만, 정작 올해 의료급여 예산은 삭감했고, 지난해 의료급여 예산은 7000억원이나 불용했다. 이 제도가 필요한 사람이 없어 남은 돈이 아니다. 복잡한 법과 조항이 체계적으로 빈곤층의 제도 이용을 막아선 결과다.

송파 세 모녀가 떠난 지 10년이 흘렀다. 빈곤이 이렇게 보편화된 시대에 왜 우리에게는 보편적 빈곤 정책이 없나. 송파 세 모녀 사건 당시 대통령은 “있는 제도도 활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있는 제도를 활용하지 않는 것, 빈곤 당사자인가, 국가인가?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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