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한마디 정치

2024.02.25 20:14 입력 2024.02.25 20:17 수정

공사 영역을 불문하고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이들의 침묵과 날선 말들로 인해 시민들이 상처받는 것은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다. 특히 한국 정치에서 가장 부족한 미덕 중 하나는 사과일 것이다. 많은 공직자들이 시민들에게 과오를 인정하고 진심 어린 사과 한마디를 하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자기들의 정당성을 집요하게 변호하는 모습을 본다. 참사가 터졌을 때, 국가의 관리·감독 실패가 발견되었을 때, 시민들이 위정자들에게 바라는 것은 피해 보상과 책임자 처벌 이전에 납득할 만한 설명과 진심 어린 사과이다. 생각해 보자. 동일한 실패에 대해 사과에 앞장선 사람과 변명을 일삼은 사람 가운데 과연 누가 ‘국민’의 사랑을 받는지를. 하지만 이 시대의 권력자들은 사랑받기보다는 두려움을 사라는 마키아벨리의 충고를 충실히 따르는 듯하다. 혹은 사과할 수 있을 만큼 자유롭지 못하거나.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은 매력적이다. 한마디의 적절한 말이 헤아릴 수 없는 가치를 지닐 수 있다는 것을 이미 깨달은 우리 조상들의 지혜는 참으로 놀랍다. 그리고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가 황망한 공적 실패에 대해 책임 있는 공직자의 진심 어린 마음이 담긴 품위 있는 표현의 사과를 그토록 갈망하는 이유는 민주주의에서 천 냥의 물질적 가치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사람으로서 받는 인정, 내게 벌어진 일에 대한 납득, 그리고 우리가 우리 손으로 존경할 만한 리더를 선출했다는 주권자적 확신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 정치 문화에는 말의 역할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전통이 흐르고 있는지 모른다. 정치인이 되기 위해 수사학을 연마했던 서구적 전통과 달리, 공자가 “교묘한 말과 아첨하는 얼굴(교언영색)을 하는 사람치고 어진 사람은 드물다”고 말한 후, ‘말을 예쁘게’ 하는 이들을 경계하는 문화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 정치에서는 말을 혹은 말만 예쁘게 하는 이들이 문제가 아니라 품위 있게 말할 줄 아는 공직자들이 너무도 적다는 사실이 더 문제이다. 8년 간격으로 수많은 젊은이들이 안타까운 죽음을 당했던 경험을 ‘참사’라 부를지 ‘사고’라 부를지를 두고 다툴 때, 구조가 야기한 젊은 비숙련 노동자의 죽음을 두고 왜 그리 부주의했냐면서 개인의 실수로 치부할 때, 누군가의 역량이나 아이디어의 부족을 신체적·정신적 장애, 어린이, 동물에 빗댈 때, 우리는 존엄과 평등의 정신을 담지한 적절한 정치적 언어의 가치를 아는 공직자는 어디에 있는지 묻게 된다.

당연히 말이 전부인 것은 아니다. 잘못된 공권력으로 인한 결과의 회복을 위해 국가인권위원회, 국민권익위원회,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그리고 법원을 둔 것처럼 국가의 반성에는 법적·경제적 조치가 수반되어야 한다. 하지만 말에는 좀 더 특별한 용기가 필요하다. 배·보상과 같은 관료적 행위와 달리 사과는 국가기구를 상징하는 한 인격체의 개인적 진심까지 담아야 진정성이 발생하는 특별한 공적 행위이기 때문이다.

2013년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총리 캐슬린 윈은 주 의회에 발달장애인 당사자와 가족들을 초청하여 “시설보호로 피해를 입은 발달장애인들에게, 나는 총리로서, 모든 온타리오 주민을 대표하여, 고통과 손실에 대하여 사과합니다. (…) 오늘날 우리는 발달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가능한 한 독립적으로 살 수 있고 지역 사회의 모든 측면에서 더 완전히 포함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 정말로, 미안합니다”라고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어떤 의미에서 배·보상은 오히려 쉬운 일이다. 국가가 행한 일의 정당성 문제는 논외로 둔 채, 시민의 고통을 ‘합법적인 국가 작용의 의도하지 않은 불행한 결과’로 틀 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윈 총리의 예처럼 공직자의 사과는 그런 구조적·제도적 결과까지도 자신의 내면에 끌어안아 언어로 빚어내는 정치적 행위이다.

권력은 자유의 제한을 내포하기에 그 상징적 차원인 언어에서 피지배자들에게 ‘품격 있음’을 느낄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그것이 시민에 대한 존중이다. 더욱이 치유를 위한 반성의 언어는 그 슬픔만큼 깊어야 한다. 정치가 개별 시민들을 자유로우면서도 상호의존적인 공동체로 통합해가는 과정이자 활동이라고 한다면, 품격 있는 정치적 사과는 정치공동체의 위로와 회복을 위한 출발점이 된다. 이뿐만 아니라 자칫 혐오의 대상이 될 수도 있는 시민들을 정치적으로 보호하고, 국가의 법적·정치적·도의적 책임 부담 의지를 확인시켜주고, 정의에 대한 시민적 감각을 되새기는 기능을 한다. 말 한마디의 가치를 아는 정치는 민주주의의 다음 문을 여는 힘이다.

최태현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최태현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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