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운동과 후보자비방죄

2024.03.17 20:14 입력 2024.03.17 20:25 수정

시민의 정치 표현이 실효적 힘 가질
선거현장서마저 후보자비방죄의
재갈을 물리는 건 타당하지 않다

이 죄는 폐지돼야 마땅하겠지만
총선에서라도 공평하게 적용해야

선거운동 관련 사건에 관여해본 법률가들은 가끔 이런 우스갯소리를 한다. “후보자는 대문만 나서면 선거법 위반.” 우리나라 선거법제의 문제 중 하나는 선거운동에 대한 과도한 규제다. ‘돈은 묶고 말은 푸는’ 선거운동을 지향한다면서도, 말로 하는 선거운동은 여전히 자유롭지 않다. 헌법재판소가 수차례에 걸쳐 공직선거법 중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여러 규정에 위헌결정이나 헌법불합치결정을 내린 데는 이런 배경도 있다.

공직선거법상 정치적 표현의 자유 보장과 관련해서 큰 걸림돌은 허위사실공표죄와 후보자비방죄다. 공표하는 사람이 무엇인가 상당한 근거를 가지고 있었을 경우 사후적 판단으로 해당 내용이 사실이 아니었다고 보아 처벌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원칙을 지킨다면, 허위사실공표행위를 처벌하는 것을 꼭 부당하다고 할 일은 아닐 수도 있다. 문제는 진실한 사실을 적시해도 처벌하는 후보자비방죄에 있다. 이 죄의 구성요건은 “당선되거나 되게 하거나 되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연설·방송·신문·통신·잡지·벽보·선전문서 기타의 방법으로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후보자(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자를 포함한다), 그의 배우자 또는 직계 존·비속이나 형제자매를 비방한 자”로 되어 있고, 다만 “진실한 사실로서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는 단서가 붙어 있다. 허위사실을 공표하여 후보자 등을 비방하면 대부분 법정형이 무거운 허위사실공표죄로 처벌할 수 있으므로, 후보자비방죄는 표현 내용의 허위성에 대한 입증이 안 되지만 기어이 처벌하려 할 때 동원되는 것이다.

비방이란 낱말의 사전적 풀이는 ‘남을 비웃고 헐뜯어 말함’이고, 대법원은 이를 ‘정당한 이유 없이 상대방을 깎아내리거나 헐뜯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그런데 선거운동에서 정치적 표현행위로서 후보자의 공직담당 적격에 관련된 부정적 사실을 지적하다 보면 그것은 당연히 그를 깎아내리고 헐뜯는 행위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선거에서 후보자의 공직담당 적격성을 알아 표를 줄지 말지 의사를 형성케 하는 것은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이 아닐 수 없다. 공직후보자는 ‘공적 인물’로서 그의 공적인 활동은 말할 것도 없고 가족관계를 포함한 사생활도 공직담당 적격성에 관련되는 범위에서는 심도 있는 검증의 대상이 되어야 마땅하다. 결국 선거현장에서 진실한 사실을 적시한 비방행위는 정당한 이유가 없을 수 없고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 해당하므로, 처벌 대상이 되지 않을 것이다. 보통 허위사실공표행위나 비방행위를 처벌하는 것은 흑색선전과 네거티브 선거운동을 방지하려는 것이라고 설명된다. 그러나 흑색선전 등은 출처를 밝히지 않거나 근거가 없는 사실을 전파하는 것인데, 만약 공표한 내용이 허위라면 대부분 허위사실공표죄로 의율하면 될 것이므로, 적어도 비방행위는 그 내용이 진실한 경우 흑색선전 등과는 무관하다. 사정이 이런데도 후보자비방죄(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를 따로 두어 형법상 일반 명예훼손죄(사실 적시의 경우 2년 이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 벌금)보다 무겁게 처벌하여야 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굳이 후보자비방죄를 두어야 할까.

표현의 자유는 누군가를 추켜세우는 것보다는 깎아내리는 것을 보호하는 데 의미가 있다. 나는 비방행위를 옹호하기보다는, 비방으로 인해 발언자가 입을 불이익은 정치적인 것으로 돌리면 되고 이를 법으로 처벌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지나친 제약이라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서 후보자비방죄를 둔 입법례는 없다.

또한 비방이라는 낱말이 가지고 있는 부정적 뉘앙스, 비방과 비판의 모호한 경계는 자의적인 법집행을 정당화할 우려가 있다. 선관위나 경찰, 검찰, 법원의 재량적 판단에 따라 후보자비방죄로 표현의 자유를 부당하게 제한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는 것이다. 2022년에 나온 한 연구 결과에서는 검찰이 후보자비방죄 등을 기소함에 있어 정치적 편향성이 현저함을 지적하고 있다(유종성, 박경신). 더욱이 이 죄의 주체는 후보자나 선거사무관계자로 한정되지 않는다. 일반 유권자나 언론의 표현행위도 처벌 대상에 드는 것이다. 언론의 자유를 침해할 위험이 있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자칫하면 시민의 정치 참여를 위축시키고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냉소주의를 부추길 우려가 있지 않을까. 시민의 정치적 표현이 그나마 실효적 힘을 가질 수 있는 선거현장에서마저 후보자비방죄의 재갈을 물리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이 죄는 장차 폐지되어야 마땅하겠지만, 우선 다가오는 국회의원 선거에서라도 공평하게 또 최소한으로 적용해야 옳을 것이다.

정인진 변호사·법무법인 바른

정인진 변호사·법무법인 바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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