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공개 청구는 아무런 죄가 없다

2024.06.02 20:54 입력 2024.06.02 20:56 수정

최근 정보공개 청구가 공무원을 괴롭히는 원인으로 지목받고 있다. 모 청구인이 전국 초등학교에 전교 임원선거 관련 정보를 수천건 요청했다. 지난달 19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서울시교육청은 민원성 무차별적인 정보공개 청구에 단호히 대응하겠다. 과도한 갑질 정보공개 청구가 되는 것을 막고 민원담당 공무원을 보호하기 위한 정보공개법 개정에도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 정보공개제도를 보면서 관련 활동가로 살아온 경력에 자괴감이 들고 있다. 1998년 정보공개법이 시행된 후 투명성·알권리 측면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했다. 해외 개발도상국들은 정보공개제도를 배우기 위해 한국을 찾고, 사례를 분석했다. 공공기관 부패가 심각했던 중국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보공개제도를 도입할 때 한국 사례를 철저히 참조했다.

정보공개제도가 발전할 수 있던 원동력은 시민단체와 언론이 공공기관을 상대로 적극적으로 제기한 정보공개 청구였다. 2000년대 업무추진비부터 최근 특수활동비 공개 활동까지 청구와 소송으로 이어진 준법투쟁 결과물로 정보공개제도는 사회 곳곳에 자리 잡았다. 대법원 판례 등으로 결정된 사안은 사전정보 공표로 미리 공개하는 입법을 진행했다. 한국판 선샤인 액트가 퍼져나간 것이다.

몇년 전 행정안전부와 함께 지방자치단체 사전정보 공표를 평가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너무 발전한 모습에 감동받은 기억이 있다. 보조금 집행실태 감사 결과, 성인지 예산내역, 고문변호사 성명과 소속까지 상세히 공개되어 있었다. 법 시행 초기에는 소송까지 가야 받을 수 있는 자료였다.

시민의 권리가 발전하면 공무원은 피곤해지는 법이다. 매년 정보공개 청구는 늘어나고 있지만 예산과 인력은 제자리다. 담당 공무원만 독박을 쓰고 있다는 불평이 터져나왔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행안부도 정보공개제도 운영 개선을 준비하고 있는데 어떤 것이 필요한지 살펴보자. 우선 정보공개법 처벌조항을 신설해야 한다. 청구인의 모욕적 언사와 괴롭힐 목적의 청구도 처벌 범위에 넣어야 하지만 청구인의 정당한 청구를 공공기관에서 방해할 때 처벌도 포함해야 한다. 현행법에도 “공개 여부의 자의적인 결정, 고의적인 처리 지연 또는 위법한 공개 거부 및 회피 등 부당한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적시하고 있지만, 이를 위반할 시 처벌조항이 없다. 무작정 시간 끌기를 하고, 공개 처분 이후 내용은 비공개하며, 멀쩡히 잘 있는 기록을 ‘정보 부존재’로 결정하기도 한다.

대법원 판례로 공개가 결정 난 정보에 대해서도 비공개 처분이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예를 들어 법무부는 고위공무원 해외 출장 정보를 계속 비공개하다가 2023년 10월에야 소송으로 공개했다. 시간과 비용의 위험성을 감수했음에도 제도적 변화를 가져오지 못한 사례이다.

유명무실한 정보공개심의회 운영도 바꿔야 한다. 법에는 비공개 처분을 받을 때 긴급히 구제받을 수 있는 기관은 정보공개심의회가 유일하다. 그러나 심의회 운영은 예산 등 이유로 대부분 서면으로 대체하고 있다. 서면과 대면회의는 정보를 이해하는 측면에서 차이가 크다.

과도한 갑질 청구 기준도 만들어야 한다. 시민단체에 있다 보면 하루 수십건 청구하는 경우가 자주 있고 내용도 기관 입장에서 불편한 것이 대부분이다. ‘과도한’의 실체적 의미는 무엇인가? 공무원들이 귀찮고 어려운 것은 하지 말라는 뜻인지 묻고 싶다. 이를 명확히 정의 내릴 수 있는 법체계가 가능한지 의문이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만들어진 제도는 부작용을 가지고 있다. 우리 사회의 투명성을 성장시켰던 정보공개제도에 대한 비난은 위험하다. 정부는 이럴 때 시민사회와 공무원의 이해를 조정하는 안을 신중하게 만들어야 한다. 정보공개 청구는 아무런 죄가 없다.

전진한 알권리연구소장

전진한 알권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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