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 사랑의 파탄

2024.06.06 20:50 입력 2024.06.06 20:51 수정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지난달 ‘재정포럼’에서 제안한 저출산·고령화 대책이 언론의 몰매를 맞았다. “남성의 발달 정도가 여성의 발달 정도보다 느리다는 점을 고려하면 학령에 있어 여성들을 1년 조기 입학시키는 것도 향후 적령기 남녀가 서로 매력을 더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데에 기여를 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 문제가 되었다. 하지만 글을 직접 읽어보면 귀담아들을 내용이 있다. 저자는 선행연구를 검토한 끝에 “인구밀도가 증가할수록 출산율이 감소하고, 인구밀도가 감소할수록 출산율이 증가하는 인구 자가 조절 메커니즘의 존재를 시사한다고도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인구밀도가 삶의 쾌적도를 낮추기 때문이다. 이러한 주장은 OECD 국가 중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대한민국은 삶의 쾌적도가 제일 낮기에 출산율이 낮을 수밖에 없다는 자연스러운 결론에 이르게 한다.

사실 인구밀도는 사회학의 오랜 주제다. 특히 뒤르켐은 단순히 인구밀도를 논의하는 것을 넘어 ‘도덕적 밀도’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인구밀도가 높아지면 상호작용의 밀도가 높아지고, 이를 통해 같은 가치, 규범, 생활양식이 온 사회로 일반화된다. 사회의 구성원이 상대방을 관찰해서 자신의 행위를 조절하기 때문이다.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발달로 내 눈앞에 없는 사람까지도 관찰해서 자신의 행위를 조절하는 일이 온 사회로 퍼진다. 이러한 생각은 저출산의 원인을 상호작용 차원에서 설명해준다. 연애-결혼-출산-육아의 자연적 연계를 실천하는 사람들을 관찰해보니 삶의 쾌적도가 극히 떨어진다. 나는 이 자연적 연계에 들어가지 않겠다! 때마침 여성가족부가 펴낸 2023 청소년종합실태조사 보고서는 청소년이 결혼을 당위로 받아들이는 인식이 전체적으로 낮아지고 있고, 특히 소득이 낮을수록 그 추세가 더 뚜렷하고 가파르다고 말한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여러 설명이 있을 수 있겠지만, 여기에선 낭만적 사랑의 파탄으로 접근해보자. 낭만적 사랑은 상대방의 겉모습에 첫눈에 반하는 시장의 사랑이다. 명품의 겉모습에 한눈에 반하는 것과 같은 비합리적 체험이다. 하지만 이 명품이 일상의 삶에서 너무 동떨어져 있기에 정상적으론 결코 획득할 수 없다. 방해자까지 나서니 힘들다. 낭만적 사랑은 굴곡진 연애를 통해 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결혼으로 승리한다. 뒷부분에는 지루한 산문의 사랑이 기다리고 있다. 상대방의 겉모습이 가져다준 즐거움과 쾌락이 어느 정도 가라앉는다. 근본적인 물음이 떠오른다. 이전처럼 더는 즐거움과 쾌락이 없음에도 왜 둘이 평생 서로를 배타적으로 사랑하며 살아가야 하나? 분명 시장의 사랑인데도 한번 구매하면 절대 반품할 수 없다. 운명으로 알고 평생 둘만 독점적인 사랑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이를 위해 부부는 함께 이루어나갈 장기 공동 목표를 설정한다. 자녀 양육이 가장 대표적이다. 부부는 자녀의 미래를 위해 상대방을 끊임없이 조절하려고 한다. 이러한 상호 조절이 보완적으로 잘 충족될 때 가족은 유지된다.

외환위기를 틈타 신자유주의적 구조화가 일어난 이후 직장은 수많은 비정규직과 일용직으로 바뀌었다. 단기적인 노동계약이 노동시장 전반을 지배하는 상황에서 남편 혼자 벌어서는 가족을 부양할 수 없다. 아내도 아이도 노동시장으로 불려 나간다. 투잡, 스리잡을 뛰지만, 축적은커녕 하루하루 연명하기도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 장기적인 애착 관계를 맺기란 쉽지 않다. 맞벌이 부부의 삶은 하루하루가 험난한 타협의 연속이다. 도덕적 밀도가 지극히 높은 한국 사회에서 이를 관찰하고도 낭만적 사랑의 연계를 따라 살아갈 사람이 있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국가주의적 발상으로 출산율 제고 운운하기 전에, 출발부터 비정규직으로 시작해서 평생 단기 계약 갱신하며 살아가도록 강제하는 왜곡된 노동시장 구조부터 우선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

최종렬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

최종렬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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