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이참에 삼청교육대 진상규명도

2017.10.01 20:21 입력 2017.10.02 10:57 수정
정인수 | 전 삼청교육진상규명 전국투쟁위원장

촛불혁명으로 집권한 문재인 정부의 검찰이 박정희·전두환 정권 인권침해 사건에 대해 직접 재심 청구를 하는 등 과거사 반성을 본격화하고 있다. 만시지탄의 감이 없지 않으나 다행이라 생각한다.

[기고]이참에 삼청교육대 진상규명도

전두환 신군부가 1980년 한국판 수용소군도, 즉 삼청교육대를 통해 자행한 일련의 인권유린은 캄보디아의 킬링필드에 버금가는 대학살극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당시 전국적으로 자행된 토끼몰이식 무차별 검거로 6만여명이 체포되고 4만3599명이 죽음의 수용소로 끌려갔다. 끌려간 대부분은 민초들이었다.

1989년 노태우 군사정권 발표를 보면 삼청교육대 안에서 52명이 총에 맞거나 구타를 당해 죽었다. 또 후유증 사망자 397명, 행방불명자 4명, 정신이상자를 비롯한 장(상)해자 2768명으로 나타났다.

같은 시기에 발생한 광주민주화운동의 경우 1988년 정부 공식 발표를 보면 피해자는 사망 191명, 부상 852명 등이다. 이를 보더라도 삼청 학살 피해자의 숫자는 대단한 것이다.

광주민주화운동의 경우 1990년 7월 제정된 관련 보상법에 의하여 피해보상과 명예회복을 위한 제반 조치가 뒤따랐다. 국립5·18민주묘지를 조성하고 관련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정부 차원의 사과 등 괄목할 만한 성과가 있었다.

그러나 삼청교육대 피해자와 관련한 ‘삼청교육 피해자의 명예회복 및 보상에 관한 법률’은 2004년 7월 제정되어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법보다 14년이나 늦었다. 피해보상 금액 또한 광주민주화운동에 비해 미미했으며, 명예회복을 위한 그 어떠한 법적·제도적 조치가 없었다고 할 수 있다. 또 삼청교육대는 전두환 신군부의 권력 장악 시나리오에 의해 자행된 현대사에 있어 미증유의 대학살극이 분명함에도 철저한 진상규명이 이루어지지 않아 책임자 처벌 등이 뒤따르지 않았다는 것은 국가적 차원의 직무유기가 아닐 수 없다.

필자는 1987년 10월 최초로 삼청교육대 만행을 논픽션으로 폭로한 바 있다. 이를 계기로 ‘삼청교육진상규명전국투쟁위원회’를 조직해 진상규명에 앞장섰다. 투쟁의 일환으로 1989년 12월27일 고려대학교 대강당에서 피해자 전국대회를 개최하고 신군부 수괴 전두환 및 이희성 계엄사령관 등 국보위 실세들과 최규하 전 대통령을 살인 및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혐의 등으로 대검찰청에 고소했다. 전두환이 백담사로 귀양 가기 직전의 일이었다.

그러나 노태우 정권은 고소 사건을 전혀 다루지 않았다. 뒤를 이은 소위 문민정부라는 김영삼 정권 또한 마찬가지였다. 최소한의 고소인 조사조차 없었다. 필자가 참다못해 수차례 촉구 민원을 제기하자 고등검찰에서 마지못해 고소인 진술을 하도록 했다. 검찰은 1993년 8월 피고소인 조사도 없이 방치하다가 ‘직권남용’ ‘감금치사’ ‘감금치상’ 등의 공소시효가 완성되었다면서 슬그머니 불기소 처분 통보를 해 왔다.

수많은 피해자가 존재하는 엄연한 역사적 대사건에 대해 당시 검찰은 가해 무리들에게 면죄부를 준 것이다. 이제 삼청 학살 사건은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기억에서조차 아물거리는 게 현실이다. 검찰은 당장 재조사에 착수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잘못된 과거사를 들추어 역사 바로 세우기에 나서고 있다. 행정명령에 불과한 계엄포고령으로 자행한 불법구금행위와 살상행위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을 통해 전두환 신군부를 단죄하고, 정부 차원의 공식 사과와 공동묘지 조성 및 위령탑 건립 등 실질적인 명예회복을 위한 제반 조치를 취할 것을 강력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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