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적법’이란 무엇인가

2019.09.03 20:58 입력 2019.09.03 20:59 수정
이지영 | 연세대 법학과 석사과정

1994년, 우리나라 최초로 ‘성희롱’에 대한 법적 판단이 이뤄졌던 일명 ‘서울대 우 조교 사건’의 1심과 2심의 판결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차이점이 발견된다. ‘기기교육 과정의 성희롱 여부’ 사실판단에서 1심은 피고 신 교수가 기기교육 시 원고 우 조교의 몸에 의도적이고 불필요한 접촉 행위를 지속해 왔다고 보았다. 반면 2심에선 같은 행위에 대해 신 교수가 우 조교의 몸에 접촉한 것은 기기조작 방법을 교육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한 것이었다고 보고 원고 패소를 선고했다.

[기고]‘적법’이란 무엇인가

이처럼 적법과 불법의 경계는 법관의 개인적인 상황 감수성의 차이에 의해 좌우되기도 한다. 같은 행위에 대한 법적 사실관계 구성에서 소위 ‘법 감정’과 개개인의 경험 차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지금껏 사법기관에 대한 ‘대중 정서’는 이러한 법관 혹은 검사의 정황 감수성에 깊은 불신을 표한 때가 많았다. 여성의 입장에선 여성의 구체적 상황에 대한 감수성이 부족한 법관이 내리는 판결에 공감할 수 없는 경우가 많고, 소위 ‘있는 자들을 위한 법’을 비판하는 대다수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법이 기득체제를 옹호하는 방식으로 적용되는 현실에 분노한다.

특히 ‘법무부 장관’이라는 자리는 이러한 ‘법’ 전반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과 개혁을 향한 기대 모두를 상징한다. 따라서 법무부 장관에게 기대되는 중요한 자질 중 하나는 이러한 ‘일반의 법 감정’에 준하는 정황 감수성이며, 이는 서민이라 불리는 대다수 국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이치와 수준에 맞닿아 있어야 한다. 이에 많은 국민들이 이러한 ‘국민 정서’와 배치되는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의구심을 표명해온 것은 당연하다.

특히 많은 젊은이들에게 조국 후보자 자녀의 소위 기득권 교육 사다리 문제는 심각하게 좁은 취업의 문, 노력에 비례하지 않는 각종 사회적 이권의 문제와 맞물려 불평등의 문제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이 불평등 감수성의 실체는 단지 언론에 선동된, 그저 조국 후보자 개인에게 과도하게 집착한 선택적·단죄성 도덕 감정만으로 매도될 수 없다.

일부 인사들은 이러한 대중적 의구심 자체를 반대쪽 언론의 선동에 미혹된 것으로 보고, 이를 사법개혁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여기기까지 한다. 물론 조국 후보자 가족들에 대한 지나친 사적 관심과 비난의 정서는 과도하고 선동적인 측면도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 있는, 그와 그가 속한 집단의 삶의 궤적이 국민 정서에 괴리되는데도 왜 적법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규명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번 사태는 정치 공학과 전술이라는 좁은 테두리를 벗어나 있다. 또 조국 후보자 개인과 그 가족들만의 문제로 협소화될 수 없다.

같은 기자간담회를 두고도 평행선을 달리는 평가처럼, 지난 반세기 동안 이어져 온 양 진영 간 깊은 불신의 이념에 갇혀 ‘조국’이라는 상징을 해석하는 데 몰입하고 서로를 비방하는 역사를 되풀이하고 끝난다면 실질적으로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 이 문제가 별것 아닌 ‘적법한 것’이라 보는 입장과 하루하루 피 말리는 취업·입시 전선에 서서 개인의 노력 외에 어떤 사다리도 꿈꿀 수 없는 이들이 느끼는 ‘적법’의 지점은 다르다. 그리고 이 지점에 정치·사법 개혁을 향한 염원이 있다. 조국 후보자에 대한 의혹이 결국 모두 ‘적법한 것’이라 해도, 이번 일로 터져 나온 젊은이들의 공분을 ‘우매·선동’이라는 말에 가두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전략과 전술이 중요하다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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