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심리사 법제화로 국민들 안전한 심리서비스 누려야

2021.06.16 03:00
최기홍 | 고려대학교 심리학부 교수

코로나19로 인해 한국인의 30~40%가 우울감과 불안감을 경험하며, 약 20%는 자살을 생각했다는 보고가 있다. 그만큼 삶이 고달프고 마음이 힘들다는 방증일 것이다. 하지만 지친 마음을 돌보기 위해 심리상담을 받으려고 할 때, 어느 곳을 찾아가야 할지 알기란 쉽지 않다. 우리나라에는 수천 개의 심리상담 관련 자격증이 있으며, 저마다 ‘전문가’라 자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는 믿을 만한 전문가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다. 실제로 2018년 드라마 치료로 왕성한 활동을 하며 대학에서 상담학을 강의했던 김모 대표가 내담자 성폭행 혐의로 기소되기도 했다. 심리사 법제화가 무척이나 반가운 이유이다.

최기홍 | 고려대학교 심리학부 교수

최기홍 | 고려대학교 심리학부 교수

최근 (사)한국심리학회를 중심으로 심리서비스(심리사) 법제화가 추진 중이다. 현재는 법안의 기본방향에 대해 관련 직역의 의견을 청취하고 있으며, 조만간 국민들에게 법제화의 본질과 구체적인 방향을 발표할 계획이다. 하지만 심리사 법제화의 본질과 구체적 방향이 발표되지도 않은 시점에서 오해에 근거한 섣부른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어 몹시 안타깝다.

심리사법의 목적은 심리사의 자격요건을 법으로 정함으로써 국민들에게 “전문적”이고도 “안전한” 심리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함이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심리서비스법’에 따르면, 심리사가 되기 위해서는 인간행동에 대한 이론, 연구결과 그리고 실무가 포함된 강도 높은 심리학 교육과 수련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 과정에서 공감과 경청 그리고 소명 같은 기본 요소는 물론 정신병리, 상담 및 평가 실습, 발달, 인지, 학습, 성격, 윤리, 연구 방법 등을 포괄하는 전문적인 역량을 갖추게 된다. 일각의 우려와는 달리 심리사 법제화는 타 직역의 영입을 막지 않으며, 민간 상담 자격자들의 활동을 제한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심리사법에서 제안하는 수준의 교육(관련 교과목 이수)과 수련 과정을 마친다면 전공에 구애받지 않고 심리사가 될 수 있다. 이미 강도 높은 교육과 수련 과정을 거쳐 전문가로 활동하는 이들 중에는 심리학과가 아닌 타 학과 및 특수대학원 상담 전공자들이 있으며 심리사법은 이들을 포괄하는 법이 될 것이다.

권수영 교수는 최근 잇따라 기고한 경향신문 칼럼(5월5일자 ‘심리상담사의 자격, 그리고 소명’, 6월2일자 ‘한 심리상담사로부터 온 편지’ 등)을 통해 심리사 법제화의 본질을 왜곡하고 상담사의 자격으로 ‘소명’을 강조했다. 심리사 법제화의 핵심은 과학적 전문성을 가진 전문가의 양성이다. 소명은 전문적인 심리서비스의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이 될 수는 없다. 앞서 언급한 드라마 치료사는 목회자이기도 하여 스스로는 충분한 소명을 가졌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채 소명에 기대어 상담을 하는 것은 내담자에게 무익할 뿐만 아니라 위험하기까지 하다.

권수영 교수는 인본주의 심리학의 대가인 로저스가 심리사 법제화에 대해 깊은 한숨을 지을 것을 우려했지만, 필자가 예상컨대 그가 살아 있었다면 오히려 박수치며 환영할 것이다(카를 로저스는 성직자였지만 대학에서 임상심리학 과목을 듣고 심리상담을 하는 전문가가 되고자 진로를 바꾸었고, 이를 위해 동 대학원 박사과정에서 임상심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로저스는 심리서비스의 과학적 접근을 강조한 대표적인 학자이다. 그가 속해 있던 미국심리학회를 비롯해 국제심리연맹, 아시아퍼시픽 심리연합 등의 국제기구 모두 대한민국의 심리사 법제화를 지지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자살률과 심리사의 숫자는 반비례한다. 심리사가 한 국가의 정신건강 영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방증일 것이다. OECD 국가 중 심리사 법제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나라는 칠레와 한국을 포함한 두세 개 국가에 불과하며, 대한민국 수준의 심리사 인력을 갖춘 나라 중 심리사 법제화가 되지 않은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이제는 그 오명에서 벗어나 국민들이 안전한 심리서비스를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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