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정치인의 언어, 그 위험한 언어사회의 징후

2022.08.31 03:00
신동일 중앙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영국의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는 정계의 관행을 깨고 최연소 영국 총리로 취임했습니다. 낮은 인지도에도 불구하고 이례적으로 보수당 대표로 뽑혔고 6년 동안 총리로 재임했지만 브렉시트 국민투표 가결의 책임으로 허무하게도 갑자기 사퇴했죠. 그래도 의회에서 마지막 질의응답을 할 때 캐머런 총리가 남긴 “저도 한때는 미래였습니다”라는 셀프 패러디는 지금까지 회자됩니다. 비아냥을 받으며 물러나면서도 그의 언어는 여전히 리더다운 품격이 있었습니다. 그의 유머에 환호도 넘쳤습니다.

신동일 중앙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신동일 중앙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누구나 정치인처럼 분투하는 삶을 살다가 그렇게 갑자기 물러나곤 하죠. 예외 없이 앞선 자들처럼 성공만큼 실패하고, 사랑한 만큼 아파하고, 병이 들거나, 늙고, 잊혀지는 다음 차례가 됩니다. 하지만 그런들 또 어떤가요. 아프고 창피하고 실패해도 그래도 자유롭게 꿈꾸고 사랑하고 질주한 삶이 있었다면 말입니다. 잘 놀았고 신나게 일했고 그러니 기품을 버리고 웃음까지 내팽개칠 이유는 없죠.

고집이 있고, 열정이 넘치는 사람은 성공한 만큼이나 배제되고 크게 실패할 가능성도 높아요. 그런 그들이 내리막을 직면하면서 말의 윤기만큼은 여전히 반짝일 때 난 마음이 짠해집니다. 밉던 사람도 밉지가 않아요. 마음이 아픈데 픽 웃게 하는 말, 눈물이 나는데 기뻤다는 말, 두려움과 의연함이 교차되는 말, 그런 인생(의 말)은 모순적이지만 그만큼 역동적입니다. 딴딴해 보이면서도 밝아요.

그런 말 잔치라도 없다면 우리 모두 세상을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요? 세상 살기가 녹록지 않아서 좋은 말이 안 나온다고요? 예, 그래도 말은 우리 내면과 세상의 거울 역할만 하지 않습니다. 다른 말을 선택하면서 새로운 기회가 올 수도 있죠. 다른 언어를 배치하면 기억과 기대는 다르게 편집될 수 있고요.

정치인의 권력지향성을 탓할 건 없습니다. 서로 신념이 다르고, 차지할 권력은 제한적이라면, 싸워야 할 때 싸워야죠. 그렇다고 해서 권력가의 언어가 늘 퍽퍽하고 거칠 필요는 없습니다. ‘진리’와 ‘거짓’으로만 구분된 이항 대립의 세계에 사는 정치인에게는 자신의 이념만이 진리입니다. 언어는 자신의 이념을 실현하는 무기이고 집단이 추앙할 교리를 만드는 도구일 뿐이죠. 그런 정치인에게 말랑한 의견, 다른 판결, 다양한 세상을 말하다가 혼쭐이 날 수도 있어요.

하지만 내가 배운 민주주의(의 언어)는 흰색이나 검은색만의 연장도 아니고, 빨간색이나 파란색만도 아닙니다. 덧칠 가득한 회색입니다. 해석하고, 경쟁하고, 합의하고, 다시 설명하면서 계속 포개지고 덧칠이 되면 회색빛의 민주주의가 됩니다. 거기 언어는 말랑한 풍자도 있고 반박하는 말장난도 넘칩니다. 말과 글에 재갈을 물리고 단색이나 원색으로만 도배한 권위주의 사회와는 언어의 때깔부터 다릅니다.

구태의연하고 재미없고 서로 경직된 표정으로 으르렁대기만 하면, 서로의 말에 트집만 잡고 불이행의 정치만 강화됩니다. 그걸 ‘정치의 실종’이라고 하죠. 같은 편끼리만 통하는 당파적이고 완고한 야유만 남겨집니다. 장르만 놓고 보면 우리 정치도 코미디, 드라마, 미스터리를 오가는 흥미진진한 서사물이죠. 그런데 위대한 지도자의 절대명령과 야심찬 제도에 관한 훈계만 넘친다면 우리가 어떻게 그걸 계속 보고 있을까요?

엄숙한 언어로만 우리 마음을 훔칠 수 있을까요? 예를 들면, 우리 청년은 같이 바보가 되는 유머 코드를 좋아합니다. 내게 비호감이었던 캐머런 전 총리의 리더십도 그랬어요. 비관적 시선을 풍자로 비켜난 그의 기지를 본 이후부터 그가 아주 달라 보였습니다. 말 하나에 그럴 수 있냐고 하겠지만 사실 냉담한 마음이 처음 든 것도 그 사람을 재현한 언어의 배치로부터 시작된 것이니까요.

정치인이라면 누가 국회에 분홍 원피스 입고 왔다고 타박이나 하지 말고 뭐든 다양한 언어와 기호를 조합해서 선포든 반박이든 간청이든 제발 우리 눈과 귀에 보이고 들리도록 애써 주세요. 유머도 연습하고 주변 기자나 PD에게 잘 보여서 그런 모습이 드러나도록 부탁도 하세요. 그럼 우리도 그걸 보다가 한바탕 웃어볼 수도 있고 억센 마음도 좀 말랑해지겠죠.

난 그걸 정치인의 ‘이미지 메이킹’이라고 폄하하지 않을 겁니다. 이미지를 메이킹할 수 있는 말이 그렇게라도 자꾸 사용되면 경직된 우리의 언어-세상에 새로운 변화가 시작되는거죠. 들을 만한 말이 사라지고, 서로 듣지도 않는 말만 넘친다면 그건 위험한 언어사회의 징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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