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치와 정치

2013.08.18 21:22 입력 2013.08.19 00:08 수정
박상훈 | 도서출판 후마니타스 대표

정치학의 출발은 통치가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가를 자각하는 것에서 비롯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잘 통치하고 또 잘 통치받는 것을 이상적 정치 상황으로 보았다. 이를 통해 모두에게 공통된 조건을 좋게 해야 개개인이 좋은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민주주의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시민들이 통치에 참여해 공동체를 다스려보는 일은 공적 윤리 가운데 으뜸으로 여겨졌다. 타자를 다스린다는 것과 스스로를 통치한다는 것이 서로 배타적이지 않음을 인식한 사람들도 민주주의자들이었다. 현대 민주주의가 공적 통치에서 벗어난 사적 삶의 가치를 폭넓게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좋은 정부와 좋은 통치자를 선출하는 것이 정치의 중심 문제인 점은 변함이 없다.

[정동칼럼]통치와 정치

민주당은 박근혜 정부에 대해 ‘통치가 아닌 정치’를 하라는 비판을 하곤 한다. 안철수 의원도 ‘통치가 아니라 소통’을 해야 한다는 말을 많이 한다. 통치라는 말을 이들만 싫어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국가나 정부의 역할을 부정적으로 보는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과 행정학자들이 대표적인 예인데, 이들은 통치나 정부를 뜻하는 거번먼트(government) 대신 민관의 상호작용을 의미한다는 거버넌스(governance)를 앞세운다. 통치라는 것이 어느덧 정치에 반하는 나쁜 말이 되었다. 좋은 느낌의 용어를 사용해서 현실이 좋아질 수 있다면 시비할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악을 응시하는 대신 외면하고 비극을 못 보게 해서 행복을 도모한다는 발상이 망상이듯이, 인간의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의 하나인 통치를 없앤다고 좋아질 것은 없다. 오히려 정치의 본질과 실제 현실을 못 보게 만드는 부정적 효과만 커질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도 하나의 통치체제이고, 당 대표에서부터 평당원에 이르는 구성을 가진 민주당도 하나의 통치조직이다. 기업이나 학교뿐 아니라 종교기관도 기본적으로는 통치체라는 특성을 갖는 바, 어쩌면 조직과 체제를 말하는 순간 우리는 통치라는 문제를 대면하게 되는지 모른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통치를 잘하는 것, 그렇게 해서 조직을 안정화하고 구성원들의 참여와 열정을 더 크게 통합하는 데 있지 다른 것이 될 수 없다.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여당은 정권이나 대통령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특징을 가진다. 정당 없이 집권한 이승만 정권에서 만들어진 자유당이 그 기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후에도 같은 패턴을 보였다. 따라서 한국의 여당은 일반적인 보수정당이라는 특성보다는 국가로부터 파생된, 일종의 ‘국가의 분견대’ 같은 특성을 더 많이 갖게 되었다. 반면 야당은 국가권력의 분배과정에서 소외된 보수세력의 정치세력으로 출발해 분열과 이합집산, 파벌정치의 양상을 반복하는 특징을 보였다. 그 이후 민주화를 요구하는 반대당으로서의 성격은 강화되었지만 무이념 내지 무정체성의 정당이라는 성격은 심화되었다. 파벌 갈등에서 이념이나 계층적 기반의 차이가 중요했던 적은 없었다. 그보다는 인맥이나 지역연고 내지 ‘친DJ’ ,‘반DJ’, ‘친노’, ‘비노’처럼 내부의 권력 관계적 측면이 늘 지배적이었다. 이념적 자원이나 계층적 기반이 약하다 보니 역설적이게도 야당은 여당이나 정권의 잘못에서 그 존재 이유를 찾는 경향이 강해졌다. 선거 때만 되면 ‘야권’이라고 불리는 기묘한 공간이 열리는데, 이 안에서 전개되는 야당 정치란 것도 대개는 여당의 잔여영역을 누가 더 많이 독점적으로 대표할 수 있는가를 다투는 일로 나타났다.

야당 정치가 이런 낡은 패턴의 악순환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그러려면 야당도 보편적 통치 이념을 가져야 하고 스스로 어떤 정당인지부터 분명해야 한다. 당원의 참여와 지도부의 책임성이 잘 결합된 강력한 통치조직이 되어야 한다. 미래의 정부를 이끌 예비 통치체로서 실력과 공적 소명의식을 키워야 하지, 말의 공격성만 앞세워서도 안 될 것이다. 오늘 당장은 촛불도 들고 저항을 해야 하겠지만, 야당이 결국 가야할 길은 통치(정부)를 맡길 만한 강한 대안 정당이 되는 것이지 않나 싶다. 통치는 야당도 잘해야 할 일이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