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북 허수아비 대 유신 허수아비

2013.08.29 21:32
이근 |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싱크탱크 미래지 원장

박근혜 정부는 과연 유신독재의 연속일까 아니면 야권은 지금 유신이라는 허수아비를 만들어 놓고 괜한 매질을 해대는 것일까? 물론 실제 인물이 아닌 허수아비를 만들어 놓고 때리는 것은 정치적으로 자주 사용하는 오래된 전법이다. 정적에게 종북의 꼬리표를 붙여서 때리고 제거하는 전법은 그 효험이 뛰어난 ‘허수아비 전법’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약발이 먹히는 허수아비가 있다면 약발이 먹히지 않는 허수아비도 있다. 종북의 허수아비는 약발이 먹히지만 유신의 허수아비는 약발이 잘 먹히지 않는다. 북한은 어떤 의미에서건 우리에게는 현존하는 최고의 위협이고 또 실패한 정치경제 체제로서 실재하고 있다. 하지만 1987년 이후 무수한 민주적 선거가 반복되고 군에 대한 문민통제가 이루어지고 있는 현재 70년대에 끝난 유신이라는 허수아비를 만들어 놓고 때리는 전략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알 수 없다.

[정동칼럼]종북 허수아비 대 유신 허수아비

그래서 시기상조의 느낌도 없지 않지만 진보진영의 욕을 먹을 각오로 야권의 허수아비를 무너뜨려 보고자 한다. 왜 종북이라는 허수아비는 가만히 두고 유신의 허수아비만 들먹거리느냐고 힐난할 독자들도 있겠지만 종북의 허수아비는 아무리 해부해도 북한이 있는 한 좀비가 돼서 계속 되살아난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야권이 대안세력으로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유신이라는 허수아비를 내세우는 수준을 넘어서 이 시대의 문제를 정확히 읽어내고 대안을 제시하는 능력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이미 곪아터진 지나간 권력의 부정부패, 그리고 민주주의의 파괴를 제대로 짚고 넘어가지도 못하는데 출범한 지 몇 개월도 안된 살아있는 권력을 야권이 어설픈 유신이라는 허수아비로 다룰 수 있을지 상당한 회의가 든다.

냉정하게 판단할 때 박근혜 정부를 유신의 연속이라고 부르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작명이다. 민주화, 세계화·정보화라는 개방과 투명성의 물결 속에서 선진국에 진입한 한국에 유신시대 대통령의 후손이 대통령이 됐다고 다시 유신시대가 돌아오지 않는다. 시대가 바뀌고 경제사회 구조가 바뀌고, 국민의 의식과 수준이 바뀐 새로운 시스템에서 통치자 개인이 국가를 통째로 타임머신에 실어서 일순간에 과거로 돌려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독일에 갑자기 나치 정권이 들어설 수 없으며, 일본에서도 아베가 총리가 됐다고 해 군국주의 국가가 되살아난 것은 아니다.

거기다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족적을 보면 군사독재나 강압정치에서 실력을 발휘한 것이 아니라 선거의 여왕이라는 호칭이 붙었을 정도로 민주주의 제도인 선거에서 실력을 발휘한 인물이다. 총선이나 지방선거에서 바람을 일으킬 때 특별히 부정선거를 한 것도 아니고 군대를 동원해 쿠데타를 음모한 적도 없으며, 오히려 민주주의의 광장에서 시위까지 했다. 국정과제를 뽑아내는 것을 보더라도 시대의 흐름을 읽는 면에서는 야권에 전혀 뒤지지 않으며 오히려 진보진영의 아젠다를 선점해 버리는 유연성마저 가지고 있다. 4대강과 자원외교 같은 부정부패의 소지가 있는 공약도 딱히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밀어붙인 공약도 없다. 소통은 잘 안되지만 독재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야당 탄압과 언론 탄압도 아직 보이지 않고 남북관계나 외교도 상상외로 유연한 면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박근혜 정부에 대응해 야권이 대안세력으로서 뿌리를 내리고자 한다면 시대착오적인 유신의 허수아비를 재활용하기보다는 박근혜 정부와 집권세력의 구조적 문제를 적시해서 ‘구조교체’와 관련된 미래지향적 아젠다를 제시해야 한다. 아마도 현재와 같은 남북관계가 지속된다면 진보가 박근혜 정부와 차별성이 부각되는 대북정책으로 실력을 발휘하기가 어려울 것이고 경제민주화라는 담론도 희망과 꿈을 주는 미래지향적 담론이라기보다는 지난한 싸움의 담론이기 때문에 국민들은 이에 대한 상당한 피로감을 느끼게 될지 모른다. 다음 야권의 공약들이 단지 박근혜 정부 2.0이 된다면 정권이 바뀐다 하더라도 뿌리가 단단한 대안세력이 되지는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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